국내외 정세가 심각하다. 북한은 여러 차례 핵실험을 감행했으며 주변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며 나름의 행보를 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외교안보 전문가로 활동한 정옥임 전 의원을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외교적 상황과 정치 세계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줬다. 논리 정연함과 유머감각이 공존했던 그와의 인터뷰는 가슴이 후련했다.
-황: 북한의 핵을 두고 한쪽에서는 공격용, 다른 쪽에서는 방어용이라고 한다. 핵을 방어용 공격용으로 구분할 수 있나.
▶정: 말이 안 되고 무익한 정치공방이다. 핵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국방정책을 하는 목적은 결국 생존이다. 이는 상대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공격용이다. 상대를 공격하고 제압할 힘이 있어야 그게 방어가 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인질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현실이 엄중하다. 지금 개진되고 있는 안보 상황이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의 장, 정치인들의 궤변 경연장이 아님을 경고하고 싶다.
-황: 그렇다면 이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정: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그것이 어마어마한 살상 능력을 갖긴 하지만, 그들은 '핵도발국'이다. 핵도발을 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NPT 규정상 5개국만 핵 보유, 나머지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수혜를 받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북은 NPT 가입국이면서 이를 위반했다. 따라서 인디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런데 북한을 예외로 인정하는 외교적 행위를 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안보 입지와 외교 위상은 추락한다. 더구나 우리는 동맹국인 미국의 핵우산 및 확장억제전략에 의존하는 방어적 상황이다. 북핵 위협을 해소할 보장책을 백 퍼센트 확신하기 어려운 입장에서 북핵을 인정하는 악수(惡手)를 둬서는 안 된다. 핵 인질국화되는 상황이 된다. 북핵을 불용하는 일관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황: 그럼 지금처럼 대화로 핵 문제를 풀자고 하는 것은 어떤가.
▶정: 외교는 대화이고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비용이 덜 드는 대화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역설을 망각하고 있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지금 손발이 묶여 있는 인질이 인질범에게 대화를 하자고 하면 그 인질범이 인질과 대화를 하겠나.
-황: 코리아 패싱도 우려스럽다.
▶정: 미국 클린턴 행정부 당시북핵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중도 보수에 속했던 김영삼 정부도 이 문제에 민감했다. 그때는 '통미봉남'이라고 해서 북한과 미국이 협상을 하는데 북한이 한국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는 것이 쟁점이었다.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압박하려는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 정부가 대화를 강조하며 한미 간 이견을 드러내고 동맹 간 신뢰가 문제에 봉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결정적 결단을 내릴 때 한국과 협의를 할 것인가, 민감한 군사정보를 두고 한미 간 긴밀한 소통이 잘될 것인가 등도 우려된다. 북한 문제가 너무나 예민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한미공조가 더 잘될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동맹국 사이에 권력을 가진 정치 집단의 이념지향성이 다를 때, 예를 들어 저쪽이 보수이고 이쪽이 진보일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이런 소통이 잘 안 됐던 경우가 많다. 그런 사례를 보면 지금도 잘 안 된다고 추정할 여지는 있다.
-황: 지금 미국, 북한, 우리나라 사이의 외교안보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보다 열세인 것 같다.
▶정: 상대국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급소를 쥐는 것이다. 일명 레버리지(leverage)라고 하는데, 강대국은 주로 약소국에 대해 그런 레버리지를 쥐고 있다. 하지만 약소국도 레버리지를 잡을 방법은 있다. 예컨대, 한국과 미국이 무역을 하는데 무역관계가 딱 끊어질 때 미국도 충격을 받는다면 그것이 레버리지다. 우리는 상대에 대한 레버리지가 제한되어 있어서 열세다. 북한은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북핵을 억제하려면 우리는 또 미국에 의지해야 한다. 이건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구조적인 문제다. 따라서 그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관리해 나가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반전을 노리는 외교 기술이 더 많이 요구된다.
-황: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너무 무딘 것은 아닐까. 가령, 외신은 북핵 문제로 분주한데 우리 언론에서는 예능이 방송된다.
▶정: 북핵 위기가 본격화된 때가 지난 1993년이라고 치면 지금 24년 됐으니 거의 4반세기다. 또 1953년 휴전 이후 엄밀히 따지면 계속 전쟁상태에 있다. 객관적 기준으로 보면 위기상황이 분명한데, 우리는 늘 위기상태였기 때문에 이것을 위기로 잘 인식하지 않는다. 외신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전 세계의 혼란이나 갈등을 굉장히 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언론이나 정치권이 이런 중요한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연예 프로그램 위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황: 우리나라의 국제적 입지를 견고하게 하려면 무엇이 시급한가.
▶정: 대한민국을 뚝 떼서 유럽에 갖다 놓으면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아쉽게도 주변의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데다가 북한 돌연변이 정권이 핵무기를 만들고 인민을 도탄에 빠뜨리며 위협하는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아직 약소국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존심을 삼키고라도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힘의 기본은 역시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군사력은 이제 물량보다 기술이기 때문에 기대를 걸 수 있다. 또 한류와 같은 문화 소프트파워나 스마트파워 차원에서도 우리는 장점이 많다. 1945년 2차대전 이후 몇십 년 만에 개발도상국에서 유일하게 국제사회의 모범국으로 부상한 저력을 볼 때 그런 능력을 또 한 번 발휘할 시점이 지금이다.
-황: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공사 등 북한 출신 인사들은 북한 인권문제가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북한의 인권 억압 행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리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중에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계속해야 할까.
▶정: 정치인을 뽑아주고 국민이 낸 세금을 쓰라고 하는 이유는 정치를 통해 도덕주의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국민의 안정과 생명을 보호하고 국익을 창출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치인들은 어떤 정책을 펼 때 자신의 이념으로부터 정책을 분리시켜야 한다. 또 국내 정치와 외교를 분리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인권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강제 노역이나 탈북여성문제에 눈 감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의식한다는 방증이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서 하는 게 맞다. 이 역시 정치에서 분리돼야 한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결정하는 자체도 정치적 고려이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역시 정치적 결정이다.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기준이 있다. 그걸 따라가는 가치중립적 정책이 필요하다. 당장은 정치적 의도와 안 맞는 것 같아도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인정받는 리더십이 될 수 있다.
-황: 여성 정치인의 세계가 궁금하다.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의 현주소는 어떤가.
▶정: 여성을 사회에 더 참여시키기 위한 진화 과정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후진적인 영역이 정치라고 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여성 정치인들이 나름대로 소명을 키워나가는 데 있어서 다른 영역보다 더 많은 장애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엄마로서 내 딸들에게는 가장 권하고 싶지 않은 분야가 정치다.
-황: 정작 본인은 국회의원으로 정치 참여를 하지 않았던가.
▶정: 정말로 우연한 기회였다. 나는 외교안보 전문가였고 정치권에서도 외교안보와 관련된 부문에서 나름의 소명을 펼쳤다. 물론 앞으로 여성 정치인이 늘어나서 정치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하기 바라는 측면은 있다. 그런데 그 분야가 자신의 열정과 노력과 땀만 요구하는 그런 영역은 아니다. 구조적인 장애나 모순이나 이런 것을 감당하는 것이 과연 유익한 경험인가 하는 면에서는 내 자식들에 대한 엄마 마음이 그렇다.
-황: 단지 여성 정치인이기 때문에 더 불리한 것인가.
▶정: 비례대표제를 만들어서 일삼오칠구 등의 순서로 여성 의원을 넣었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 정치인이 늘어난 측면은 있다. 꼭 여자이기 때문에 피해 본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한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아직까지도 남성 중심적이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한 여성 정치인이 영어의 몸이 됐을 때, 구속되기 전후의 모습을 마치 성형수술 전후 사진처럼 편집한 사진이 퍼졌다. 이게 바로 남성 중심적 사회의 대표 사례다. 하지만 그 자체를 감성적 논란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다.
-황: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도 영국의 대처 총리,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정: 그들이 한국인이었다면 한국의 대처와 메르켈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황: 정치계 여성 리더들이 뇌물 수수 등으로 수감되거나 퇴진하는 모습을 같은 여성 정치인으로 어떻게 보는가.
▶정: 여성 정치인의 상대적 장점은 그런 면에서 투명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다. 어찌 됐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 볼 수 없는 여러 방증과 상황이 전개됐다. 이는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본인들 입장에서 할 말도 있고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이 이렇게 노출되고 보여진다는 게 같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개탄스럽다.
-황: 여성 정치인에 대해서 '미녀 정치인' '당찬 정치인'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전문성은 부각되지 않는다. 결국 한계를 긋는 것 아닐까.
▶정: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치권에서의 경험을 비춰보면 굉장히 똑똑하고 당차고 전문적인 여성 정치인이 있더라도 언론에 호소력이 없으면 사장된다. 남성 중심적 정치 영역의 단면이다. 정치인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생명을 걸고라도 소신을 피력하는가, 국회에서 무슨 발언을 하는가, 어떤 법안을 통과시키나 등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보다는 저 여성 정치인이 무슨 옷을 입고 표정과 헤어스타일을 보도하고 스펙은 어떻게 되나 등을 더 부각시켰던 언론의 책임이 없는지 묻고 싶다. 반면, 그런 수식어로 평가되는 여성 정치인은 그런 면을 활용한 부분이 없는지 자기 반추도 필요하다.
-황: 국회의원의 최대 목표가 다음 선거 또 당선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가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구현할 수 있을까.
▶정: 그 국회의원들을 국민이 뽑았다. 또 당선되려고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가서 지역구민들에게 어떻게 하고, 지역민들은 또 어떤 사람을 뽑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한 번만 생각해보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답이 나온다. 막상 지역구에 가서 비록 피해보는 지역구민이 있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어떤 경우라도 맞는 일에는 맞다고,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과연 여의도로 보냈는지 유권자들도 생각해봐야 한다.
-황: 의원직에 있을 때가 행복했나, 지금이 더 행복한가.
▶정: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와 떨어졌을 때, 순간순간으로 보면 정점이었고 나락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에는 늘 같았다. 순간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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