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가렴(苛斂)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중국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가혹한 정치는 인정사정없는 세금을 말한다. 세금이 얼마나 혹독했으면 차라리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게 낫다고 했을까. 조세 공평 부담 원칙이 지켜지는 곳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이지만 그런 곳은 지구상에 없는 듯하다.

나라가 세금 거두는 데 혈안이 되면 황당하거나 악질적인 세금 항목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중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했던 '창문세'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창문이 많을수록 큰 집이라는 착안에 따라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창문이 많을수록 누진이 되는지라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만연했다. 창문을 합판으로 가려 창문이 아니라고 우기거나 창문을 아예 폐쇄해 버리는 가정이 속출했다. 안 그래도 일조량이 부족한 영국에서 창문세 피하겠다고 창문 수를 줄이거나 폐쇄하는 가정이 많다 보니 우울증 환자가 더 늘어나고 병원균이 창궐해 전염병이 만연했다.

프랑스에서는 머리를 굴려 창문 폭으로 세금을 매겼다. 프랑스 사람들은 창문의 폭을 줄이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프랑스식 건물 하면 흔히 떠오르는 '폭 좁은 창문'은 창문세로 인해 생겨난 건축 풍경이다. 세금을 최대한 거두려는 위정자들의 발상은 이처럼 집요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심지어 난로세, 수염세, 벽지세, 모자세, 장갑세까지 있었다. 공기세가 없었던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거둔 '문세'(門稅)가 나쁜 세금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서울 사대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물품 종류'수량에 따라 세금을 거뒀는데, 악세(惡稅)라는 원성이 자자했고 백성 불만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결국 1873년에 폐지됐다.

미스터리한 것은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세금이 늘 오른다는 점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말의 명제가 사실이라면 경제가 나빠지면 세금 청구서도 줄어들어야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올해 우리나라 국세 수입을 보더라도 정부가 애초에 잡은 세입 예산액보다 무려 27조원 더 걷혔다고 한다. 대구'경북의 국세 세수도 지난해보다 9%(7천812억원) 늘었다. 세수 현황만 보면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초호황 국면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민간 경제가 끙끙 앓고 있는데 정부 곳간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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