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여인들의 손이 자기 자식들을 삶았으니 내 백성의 딸이 멸망할 때에 그 자식들이 그들의 음식이 되었도다."
구약성경 애가서 4장 10절의 한 구절이다.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에 이른 남(南)유다의 참혹한 현실이 이 구절의 배경이다. 김사량은 소설 '향수'(鄕愁)(1942)에서 성경의 이 구절을 빌려 1942년 조선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단, "이 쓰레기 같은 자들을 어찌하오리까"라는 한 구절을 여기에 덧붙이고 있다.
소설은 1939년 봄, 동경제국대학 미학연구실에 재직 중인 이현이 평양역에서 북경행 직행열차를 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현의 북경 방문은 1919년 삼일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연락이 끊긴 누님 내외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실로 20년 만의 해후이다. 그러나 북경에 도착해보니 2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해 있었다.
삼일운동을 주도한 열혈 민족주의자 매형은 제자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뒤에 북경의 빈민가를 전전하고 있었고, 열렬한 투사였던 꽃처럼 고왔던 누님은 북경 뒷골목에서 아편 밀매를 하며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들이 낳은 아들은 부모의 반역 행위를 갚으려고 일본군으로 중일전쟁에 자원입대한 상태였다. 또한, 누나 내외와 함께 혁명을 꿈꾸었던 동지는 이제 일제 경찰의 밀정으로 전락해있었다.
이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이 지녔던 혁명을 향한 빛나는 신념과 이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모진 세월을 거치면서 그들이 끊임없이 반문한 것은 '무엇을 위해 그 희생을 했던가' 하는 한탄과 자기 회의였다. 구약 성경 속, 몰락에 이른 남유다의 상황이 그들에게서 재현되고 있을 뿐이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김사량은 그 답을 '역사의 어찌할 수 없는 힘'에서 찾고 있다. 소설에 따르면 수십만 고구려 병사들이 광야를 질주하며 만주를 평정하고 만리장성까지 진출했던 그곳에 중국의 청 왕조가 들어섰지만, 지금은 일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제국이 중국 대륙을 점령한 것은 '주어진 궤도를 달리는 역사'의 방향이 그렇게 정해졌을 뿐, 그것을 거스를 방법은 없다. 이것이 만주와 남경, 그리고 북경까지 점령한 일본 제국의 승승장구와 몰락해 가는 조선을 본 식민지 조선인 김사량이 내린 답이었다. 소설이 발표된 1942년은 일본 제국이 중일전쟁에 이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기세등등하게 싸움을 벌이던 때였다. 말 그대로 거대한 제국의 성립이 눈앞에 보이던 때였다. 김사량의 무력감이 극에 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설이 발표된 지 3년 4개월 후 일제는 패전했고 조선은 독립하였다. 이것이 김사량이 말하던 역사의 방향성이라면, 역사는 느리지만 바른 방향을 향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방향성을 이끌어내는 데 소설 속 누님 내외 같은 수많은 사람의 순수한 열정과 신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희망 없던 긴 세월 속에서 순수한 정신은 마모되어 갔지만, 조각은 남았던 것이다.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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