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시 살생부/마강래 지음/개마고원 펴냄
모든 지방자치단체는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를 꿈꾼다. 인구계획은 도시기본계획을 통해 세워진다. 도시기본계획은 20년 후 도시의 공간구조와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마스터플랜'이다. 복잡한 통계모형을 이용해 지자체들은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예컨대 2009년 부산시는 350만 명이던 인구가 2020년 41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 계획했고, 같은 기간 250만 명이던 대구시는 275만 명으로, 270만 명이던 인천시는 310만 명으로 부풀려 예측한다. 광역자치단체만 그런 것도 아니다. 경기도는 400만 명, 경북도는 120만 명이 증가한다고 계획을 세웠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예상한 지자체는 서울시가 유일하다. 이렇게 뻥튀기한 인구를 모두 합치면 1천300만 명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천176만 명(행정안전부 9월 집계 기준)이다. 말도 안 되는 계획만으로는 모든 지역이 '균형 발전'할 수 없다.
제목부터 충격적이다. 쪼그라든 지방 중소도시마다 살길 찾기 바쁜데 살생부라니. 도시계획 전문가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펴낸 책이다. 저자는 한국 지방 중소도시의 쇠퇴는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20년간 지방도시들은 지난 10년보다 심하게 쇠퇴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불길한 전망은 틀리지 않는다. 회귀분석 결과 '소멸 순위 1순위'로 꼽힌 전남 고흥군은 2040년에 인구가 '0'이 된다. 충북 보은군, 전남 해남군, 경남 하동군은 각각 2051년, 2059년, 2072년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지방도시 쇠퇴 부추긴 메가 트렌드
저자의 확신에 반박하기 어려운 건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이라는 메가 트렌드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31년 5천296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지난해 최고치(3천744만 명)를 기록하고 올해부터는 줄어들고 있다. 2065년 유소년인구는 413만 명으로, 고령인구는 1천827만 명으로 예측됐고,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47.9%로 떨어진다. 2015년 생산가능인구 3명이 1명을 부양했다면, 50년 뒤엔 1명이 어린이나 어르신 1명 이상을 먹여 살려야 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버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2~3%대에 머문 경제성장률은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로봇'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물결도 고려해야 한다.
학자들은 지방도시가 쇠락한 원인에 대해 ▷제조업 경쟁력 상실 ▷자연자원 고갈, 수요 실종 ▷미군부대 이전 ▷교통망 변화 등으로 추려 설명해왔다. 경남 거제가 조선업 위기로 휘청거리듯 경북 포항, 구미 등 산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도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밖에 광업과 어업으로 먹고살던 강원 태백과 전남 여수에도, 오락가락하는 미군부대 이전 계획에 천천히 고사하고 있는 경기 동두천, 수상교통망이 도로 교통으로 바뀌면서 중심지 기능을 잃은 전남 나주와 도로가 연결돼 다른 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간 전북 남원 등을 예로 든다. 활력이 떨어진 도시를 떠난 사람과 돈은 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몰린다. 수도권과 대도시는 집적 경제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수도권'대도시 일자리는 단순노무 종사자 비율이 높은 지방 중소도시보다 로봇'인공지능의 일자리 대체율이 낮아 생존에도 유리하다.
지방도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국가'지방산업단지를 만들어 파격적인 조건으로 기업을 유치하려고도 해보고, 나비축제, 산천어축제, 머드축제, 국제탈춤페스티벌 등 축제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도 했다.
◆압축만이 살길
문재인 정부는 재임기간 연간 10조원씩 50조원을 쏟아부어 구도심과 노후주거지를 살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도시재생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저자는 매년 도시재생사업에 들어간 1천500억원 외에 일자리사업, 환경개선사업, 상권활성화사업 등의 이름으로 도시 살리기에 투입된 돈이 연간 4조원가량 된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방 중소도시 인구는 꾸준히 감소했다.
문제는 인구가 절반이 됐다고 해서 인프라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과 광역자치단체의 1인당 평균 세출액은 지난해 1천619만원이었지만, 축소도시 20곳에서는 4천822만원으로, 1인당 3배 가까운 돈을 써야 축소도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병원도, 학교도, 우체국도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버텼지만 더는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미국 디트로이트가 파산한 것도 산업 쇠퇴로 인구가 줄면서 재정악화가 이유였다.
저자의 답은 쇠퇴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작은 도시가 살아남으려면 '집중과 압축'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선 구도심을 쇠락시키고, 도시공간을 흩트려 비용을 늘리는 외곽 개발을 멈추거나, 개발 이익을 원도심 재생에 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최초의 파산 지자체 유바리처럼 중소도시의 기능을 한두 곳으로 모아 공공서비스를 집중시키고 광역교통망을 연결해 거점 도시와의 접근성을 높이는 '스마트 축소'도 한 방법이다. 입지 적정화 계획으로 토지를 압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조그만 도시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 특성에 맞고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마을기업을 만들고,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입점을 규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모든 도시가 수도권이 될 수는 없다. 축소된 상태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모이고 빽빽해지면 대도시에 없는 비장의 무기가 생긴다. 24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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