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조동진 당신은 기억하는지

한국 포크 음악의 대부 조동진이 방광암 4기로 진단받아 고려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며 13년 만에 콘서트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지난 8월 신문 기사로 접했다. 그에 대해 잘 몰랐지만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공연을 앞두고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나는 국방 FM에서 '송기철의 스토리가 있는 힐링뮤직'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접했다. 뜻밖에 긴급 편성된 조동진 추모 특집방송이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비통함을 견디지 못해 울먹이는 듯했다. 방송을 들으면서 고인의 위대함을 새롭게 깨달았다.

지난 9월 16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추모공연으로 진행된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관람했다. 고인의 넋을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하는 진혼굿으로 공연은 내게 다가왔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 시대가 끝난 것이라고 말했던 장필순이 공연 중 보여준 절규하는 몸짓과 목소리는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것 같다.

공연장 입구 벽면에 조동진의 연대기가 게시되어 있었다. 고인의 얼굴 사진 옆 '1947년 서울 출생, 1950~196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구로 피란, 10년간 어린 시절을 보냄'이라는 내용에 눈길이 갔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고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고인의 막내 여동생인 조동희 푸른곰팡이 대표의 도움 덕분에 대구 출신인 조동진의 부친이 대구 대신동 서문교회 앞에서 조광사진관을 운영했으며, 달성동에서 살았던 조동진이 대구 수창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동진이 1991년 펴낸 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중고로 구입했다. 1990년 발표한 4집 앨범에 실린 '당신은 기억하는지' 노래 가사와 함께 실린 해설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고인이 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든 노래임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조동진은 피란지 대구의 담배 창고에서 '가갸거겨'를 배우기 시작했다. '포성과 피비린내가 휩쓸고 간 언덕 위에서 우리는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다녔다. 재수가 좋은 날엔 '나비스코 비스킷'을 몇 개 얻어먹으며 유성기판에서 주워들었던 '슈샤인 보이'를 목청껏 불러댔다'고 그는 기억했다. 1952년 발표된 '슈샤인 보이'는 손목인 선생이 작곡해 박단마가 부른 곡이다. 그는 학교가 쉬는 날이면 장난감으로 쓰이던 기계 부스러기를 비행장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내기 위해 10리가 넘는 미군 비행장까지 떼 지어 걸어다녔다고 회상했다. 지쳐서 돌아오는 길을 노래에서 '정신없이 걸었었던 눈부신 철길 그리고 뭉게구름'으로 묘사했다. 세기의 여배우 메릴린 먼로가 1954년 대구 동촌비행장(현 대구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도 조동진은 비행장 주변을 노닐고 있었을까.

'나비스코'도 '슈사인 보이'도 꿈을 꾼 듯이 모두 잊어버렸지만 같은 반 부반장이었으며 자신의 짝이기도 했던 세일러복의 소녀는 나이가 들어서도 잊히지 않는다고 시집에 적었다. '당신은 기억하는지'를 부르면서 고인은 그 모든 기억을 되살렸을 것이다.

한정판으로 발매된 조동진 리마스터링 전집에는 6장의 CD와 전곡 악보집, 문집, 사진집이 담겨 있다. 문집에는 그의 모든 노래 가사가 영어 번역과 함께 실려 있다. 6장의 음반은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추모공연은 12월 29~30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다. 2004년 서울 LG아트센터 공연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고인이 구슬프게 '당신은 기억하는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겹고 그토록 힘겨웠던 우리의 어린 시절'의 장소였던 대구에서도 '당신을 기억하는지'를 함께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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