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생들의 시각 Campus Now!] 복제된 감성 속에서 살다

신입생으로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에는 한창 페이스북이 유행할 시기였다.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처음 묻는 말은 "너 페이스북 해?"였다.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하거나 신청을 받았다. 친구 목록에 사람들이 하나씩 늘 때마다 내가 인맥이 정말 넓은 사람이 된 것처럼 뿌듯해했다. 모두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고 심지어 인사도 안 해본 '보여주기식' 인맥들이 그 절반을 차지했다.

그 인맥들이 하는 일은 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일이었고, 그건 '내 게시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줘'라는 뜻이었기에 나도 그렇게 했다. 물론 진짜 좋아서는 아니었다. 보통 게시글들의 내용은 내가 누구랑 놀았고, 내가 누구를 만났고, 내가 무슨 선물을 받았고, 내가 어디에 갔는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2년간 페이스북을 이용하다가 어느 순간 거기에 올라오는 행복한 모습을 부러워하며 나와 비교하는 내 모습에, 지기 싫어 그런 보여주기식의 글과 사진을 올리며 '좋아요' 수가 얼마나 될까 하고 전전긍긍했다. 몇 시간 전에는 추억이라 여겼던 것을 '좋아요' 수가 적으면 삭제해버리는 내 손가락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됐다.

그 뒤로도 다른 SNS들이 유행해서 계정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부정적으로 남았던 나는 그 계정도 금방 삭제해버리곤 했다. 그곳에는 비슷한 추억, 비슷한 사랑, 비슷한 아픔이 있었고 비슷한 필터,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사진 구도, 비슷한 장소, 비슷한 패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감성'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복제된 감성'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올리는 건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나는 그것을 올리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마음, 감성, 개성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자신의 감성인 척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도 내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페이스북도 시작했다. 나는 페이스북을 끊게 된 대신 '나만의 어떤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감성팔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감성을 물건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다 같은 모양으로 나오는 복제품보다 나만의 '핸드메이드' 감성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복제감성이 판치는 시대에서 자신의 감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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