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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현명한 위원회, 아둔한 정부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가 '원전 건설 재개'를 결정했다. 자칫 대가 끊길 뻔했던 원전의 불씨를 다시 살려 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사를 조속히 재개하겠다'는 입장문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문 대통령의 일방적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성급했다. 국내 과학계가 들고 일어났고, 업계의 시름은 깊었다. 원전 건설지 주변 주민들의 반발도 컸다. 논란이 커지자 문 정부는 공론화위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그 그늘 뒤에 숨으려 했다. 면밀한 검토 없이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는 아둔했고, 안전성이나 경제성, 국가산업 측면에서 공사 재개를 결정한 공론화 위원들은 현명했다.

정부는 탈원전 명분으로 미래세대를 내세웠지만 정작 그 미래세대는 '원전 재개'를 택했다. 20, 30대 위원들이 숙의를 거친 후 대거 '공사 재개'로 돌아섰다. 탈원전에 대한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정부는 여전히 탈원전을 주장하고 있지만 미련은 접고, 적절한 '에너지 믹스'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

원전의 핵심은 안전성과 경제성이다. 정부는 초기에 탈원전 명분으로 안전성을 내세우더니 여론에 밀리자 나중에는 경제성에 더 방점을 뒀다. 공론화 위원들은 여기에다 전기의 안정적 공급과 국가 산업에 대한 고려를 더했다.

우리나라의 원자로 역사는 1962년 실험용 원자로가 들어선 이래 55년 세월이 흘렀다. 24기의 원자로가 가동되면서 필요 전력의 30%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동안 단 한 차례의 인명 사고도 없었다. 이제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최신형 APR1400 원자로 4기를 20억달러에 수출한 것이 시작이었다. UAE의 원자력공사 모하메드 알 하마디 사장은 최근 경주서 열린 세계원전사업자협회 총회에서 "한국의 원전 기술력과 안전성, 신뢰성, 효율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어 환경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라 평가한 대목이 주목 대상이다.

공사 재개가 결정된 신고리 5·6호기의 APR1400 모델은 미국에 이어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심사도 통과했다. 한국의 원전 기술력이 다시 한 번 인정받고 수출 길도 연 셈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잠시 주춤했지만 원전 수출이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산업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 세계에서 59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고 160기는 건설 예정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신흥국 중심으로 원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2025년까지 연평균 1천억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전이 사양산업이라는 반핵 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세계원자력기구는 원전발전량이 오는 2040년까지 지금보다 2.5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데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중단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과 인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의 원전기술은 현존하는 원전 중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아 산업기반이 몰락한 탈원전 국가에 자국의 미래 원전을 맡길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탈원전을 선언했을 때 내심 이를 반긴 나라는 일본과 중국이다. 지난 40여 년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값싸고 안전한 원자력이 버티고 있었다. 탈원전을 했을 때 일본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이 상승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을 반겼고, 중국은 원전 수출의 경쟁자가 사라지는 것을 반겼을 일이다.

부풀려진 공포심과 탈핵이라는 명분에 얽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박차버리려는 정부는 어리석다. 국가 미래를 위해서도 일정 부분의 원전을 유지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본의 아니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떠맡아 최선의 결정을 대신 해 준 위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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