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연애 기술 같은 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밀고 당기기'가 안 되는 인간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면 진정성 하나면 충분하지 이런 기술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때문일까, 연애는 자주 위기를 겪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고, 숨기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녀를 사랑하는 나의 진정성을 '밀고 당기는 기술'과 같은 얄팍한 처세술로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는 부담스럽게 느꼈고, 그래서 마음을 억누르며 조금 거리를 두면 상대는 내 진정성을 의심했다. 때에 맞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지만 나는 치고 빠져야 하는 시점을 포착해 내는 감각이 없었다. 몇 번 이별을 통보받고, 다시 만나길 거듭한 후 우여곡절 끝에 결국 부부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오해받는 것을 못 견뎌하는 성격 탓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내 진정성을 강조했다. "내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 말 한마디 가지고 왜 그래?" "부모님께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 것 잘 알잖아?" 등. 그럴 때마다 아내는 "진정성만 있었다면 내가 다 이해해야만 하는 거야?"라고 대꾸했다. 그러고는 "정말로 진정성이 있다면 당신의 진정성만 생각하지 말고 내 상황과 기분도 이해해야지. 그게 진정성의 폭력이란 거야. 그렇게 센스가 없으니 연애도 못하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오늘 너를 혼냈지만, 아빠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아내는 내게 "실컷 혼내놓고 사랑한다고 하면 그걸 아이가 이해해? 오히려 아이는 사랑을 혼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거야"라고 했다. 내 마음이 진심이었다고 해도, 아이에게 꼭 필요한 꾸지람이었다 해도, 그것 역시 진정성의 폭력이라고 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랑을 "매일 배워나가는 것" 그렇게, "매일 창조하고 끊임없이 조정하는 노동"이라고 쓴 적이 있다. 사랑은 의지를 가진 두 주체의 만남이기에 항상 어떤 종류의 갈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 사랑한다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갈등에도 불구하고 밀고 당기고 조정하며 관계를 지속해 나가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내 아내와의 15년도 서로의 쓸데없는 고집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받아들인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내 사랑은 노동이라 고되었다.
아내든, 자녀든, 연인이든, 직원이든, 학생이든, 국민이든 그것이 누구든지 간에 "매일 창조하고 끊임없이 갈등을 조정하는 노동"을 생략해 버렸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 누군가를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일지 모른다. 진정성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위한 결정'을 할 때 그 누군가의 의지를 무시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사랑'이 '관리'로 타락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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