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세계에서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면 어느 것이 이길까?"
언제나 감정이 이긴다. 유권자는 냉철한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에 그리 흥미가 없다.
선거전략서 '감성의 정치학'(드루 웨스턴 지음)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는 이성과 감정의 충돌 사례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들었다. 명쾌하고 똑똑한 엘 고어가 버벅대고 모자란 듯한 조지 W. 부시에게 패한 것은 이상한 일일까. 선거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라면 고어의 패배가 당연하다고 여긴다.
당시 고어와 부시의 TV토론이 승패를 갈랐는데, 똑똑함과 호감도는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 고어가 통계 수치를 들며 조목조목 주장하자, 부시가 "당신은 국민들을 숫자로밖에 보지 않는군요"라고 한마디 면박준 것을 계기로 고어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거에는 감성에 기반을 둔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한국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이 곧잘 등장하는데, 감성 가운데 공포심이나 불안 심리를 자극하려다 보니 늘 문제였다. 보수 정권에서 흔히 써온 '북풍(北風'북한 변수)몰이'가 그것인데, 예전에는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이제는 유효기간이 끝나 거의 먹혀들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13대 대통령 선거일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한국에 급거 송환된 것과 1992년 대선 직전 안기부가 거물 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을 발표한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 관련자들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혐의로 기소됐으니 참으로 지저분하고 비열한 선거 기술이다.
22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공명당 연립내각이 압승을 거둔 것도 '북풍'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유세'인터뷰 때마다 뚜렷한 공약이나 전략을 제시하지 않고 북한 위협론만 줄기차게 떠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형편없던 아베 지지율이 상승했으니 북한이야말로 아베의 일등공신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와 북한이 뭔가 뒷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은 뭔가 어색하고, 그렇게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의 감정을 이용한 선거였다고는 하지만, 원칙이나 도덕성 측면에서는 뭔가 께름칙하고 불쾌하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과거 한국의 부도덕한 정권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