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관철 안되자 낙향…최근 문집 국역과정서 드러나
400년 전 조선 중기 때 4색 당파의 당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고충을 '돌직구 상소문'을 통해 직언하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학문에만 전념했던 선비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1635~1719) 선생의 사상에 대한 학술대회가 열린다.
성균관유도회 경상북도본부는 27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영양군 문화체육센터에서 성균관유도회 영양군지부가 주관하고 영양군과 안동권씨 부정공파 종중이 후원하는 '산택재 권태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이라는 주제의 학술강연회를 마련한다.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곡, 문해문중 선조인 권태시 선생은 55세의 늦은 나이로 충청 회덕군에 현감으로 부임해 4색 당파의 당쟁과 오랜 탐관오리들의 학정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고된 삶을 꼼꼼히 살펴 민본'애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상소문을 올렸던 인물이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문집 국역(國譯)과정에서 상세하게 드러났다.
이날 학술강연회에서는 박영호 경북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언종 고려대 교수가 '산택재 선생의 임관(任官)기 상황에 대하여', 신두환 안동대 교수가 '산택재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에 대해 각각 주제 발표한다.
토론자로는 김세중 연세대 교수, 이성호 성균관 한림원 교수, 강일호 성균관유도회 부회장, 김명균 교남문화 대표 등 쟁쟁한 석학들이 나서 산택재 선생의 가르침과 뜻을 기리게 된다. 산택재 선생의 상소는 최근 영양군이 추진한 고문집 국역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조정은 남인'북인, 노론'소론 등 사색당파로 갈려 연일 당쟁만 벌어진다. 당쟁에만 몰입해 권력투쟁을 일삼는 조정 대신들의 민생 외면 탓에 탐관오리들의 학정은 극심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숙종 16년 이후 노론이 지금의 여당처럼 권력을 잡고 조정을 장악한 상황임에도 불구, 남인 출신이었던 그는 여야를 불문하고 임금과 조정 대신들을 향한 직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상소문뿐 아니라 당시 유력한 대신들에게도 개인적인 서신을 보내 이중삼중으로 겹쳐진 중과세와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을 구할 방도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그는 1694년(숙종 20년) 사색당쟁이 더욱 극심해 갑술환국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당쟁 중단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다시 수차례 올렸으나 관철되지 않자, 그 길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난진이퇴'(難進易退'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쉽게 여김)를 실천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했다.
성균관유도회 김시덕 사무처장은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산택재 선생의 드높은 애민사상과 민본주의는 요즘 시대에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며 "선생은 고을 원으로서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군주와 대신들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공복으로서 망국의 당파싸움을 일깨워 반면교사의 시대적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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