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숫자에 갇힌 경제

'숫자는 수사보다 명확하다.' 언론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미 있는 명제 중 하나다. 각종 부사나 형용사를 동원한 모호한 수사보다는 정확한 수치에 근거하여 분석한 기사가 독자들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경제 관련 정보는 어느 분야보다 숫자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간혹 숫자에 대한 믿음이 의심으로 돌아올 때도 있지만 말이다.

최근 한국은행'통계청 등 경제 관련 기관들이 각종 경제 지표들을 쏟아내고 있다. 예년과 다르게 온통 장밋빛 숫자의 향연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GDP 성장률 전망을 3%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4월과 7월 0.2%포인트 올린 데 이어 세 번째로 올린 것이다. 8월 중 대구경북 수출이 전년 동월대비 10.7% 증가했다는 반가운 뉴스도 나오고 있다. 코스피도 연일 최고가 행진이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수치를 믿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통계치와 실물경제 사이에 분명히 괴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괴리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한국에서 경영을 못하겠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부동산 규제 폭탄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정책대로 하면 지역 경제가 다 죽는다'는 극단적인 발언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역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을 넘어 불신 수준이다. '가격 상승'이라는 단순한 수치만으로 대구 수성구를 지난달 기습적으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대구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수치와 현실 간 괴리는 생각보다 심하다. 올해 7~9월 대구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세종을 제외한 비수도권 1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개업소 등 일선 현장의 체감 상승률은 통계 수치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간 하락세가 이어졌던 대구 아파트값을 지난 몇 개월간 상승세로 '급등' 운운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 지역 부동산업자들의 입장이다. 올해 누계 상승률로 따져봤을 때 대구 아파트값은 오히려 0.08% 하락했다(10월 9일 기준)는 한국감정원의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이르면 이달 말 부활 예정인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가 도입하는 다른 부동산 규제에서도 이 같은 수치의 역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6'19, 8'2부동산 대책에 이어 24일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 종합대책도 금융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서 '핵폭탄' 급 규제다. 경제 기반이 약한 대구 등 지방 부동산 시장을 위한 고려나 배려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강남 집값 잡기에 매몰된 정부가 지역 경제나 시장 여건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집값 변동률에만 매달려 부동산 규제 대책을 무차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부동산 문제는 세금 폭탄과 대출 규제만으로 풀기 어렵다는 것은 많은 시행착오에서 증명된 바 있다.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길게 갈 수는 없다. 정부에서 지난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수성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시 투기 수요가 위축되어도 수성구로 몰리는 교육 수요로 인해 장기 공급 부족 문제는 쌓이고 쌓여 어느 시점에 주택대란과 폭등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역대 정부의 숫자 사랑은 각별했다. 경제 정책을 내세울 때 빠짐없이 숫자를 애용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747(7% 경제성장'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위 경제부국), 박근혜 정부는 474(잠재성장률 4%'고용률 70%'국민소득 4만달러)를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난만 돌아왔다.

새 정부도 출범 전부터 5대 비리 인사 원칙, 여성장관 30%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숫자로 내세웠던 공약을 지키는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숫자는 민감하다. 성패 여부가 숫자로 명확하게 드러나서다. 무책임한 숫자놀음에 경제 정책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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