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엄마, 엄마, 엄마'라고 땅 저편으로, 하늘 높이 외쳐 부르면 더 큰 그리움이 저만치서 돌아오는 날들이다. 자식과 가족을 위한 희생을 감내하며 사셨던 어머니는 나에게 바르게,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자 목표였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짐작 속에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어머니란 하늘이자 땅이자 세상이자 우주였다.
이런 까닭에 『대지』를 왕룽의 삶보다 그의 부인 오란의 삶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노예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처녀로 남아 농부 왕룽의 아내가 되고 여자로서보다 농부의 아내로서 땅과 노동에 매달리는 그녀에게서 우리 어머니 세대를 연상하게 된다. 오란은 말이 없고 부엌살림은 물론 살뜰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밭일도 잘하며, 자식을 낳아 번성한 가족을 일구었다.
왕룽과 오란의 땅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가치의 불변함에서 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란이 왕룽과 함께 생산을 했다면 작은 아버지네와 롄화, 그녀를 돌보는 토츄엔, 그의 자식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 왕룽의 재산과 곡식을 축내는 인물들이자 땅의 의미를 왜곡하는 인물들로 여러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그의 아들 세대는 땅의 소중함을 저버리고 사치와 환락으로 허물어진 황부자 집의 전철을 밟아간다.
청나라 말기부터 중국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농부의 삶을 그린 『대지』는 자연과 여러 역경을 딛고 대지주가 된 왕룽의 땅에 대한 애착이 담긴 작품이다. 중국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노예 제도, 여성의 지위, 처첩 제도 등 가족 제도, 사회 제도와 변발, 전족, 시장 풍경, 인력거 등 중국의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오란을 통해 또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은 고난과 인내의 삶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지은이 펄 벅(1892~1973)은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열여덟 살까지 보냈고 1930년 초까지 중국에 살면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펄 벅 재단을 통해 전쟁고아 혼혈 사생아를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과의 인연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박진주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그녀는 여러 봉사활동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왕룽의 일대기이기도 한 『대지』는 성실, 고난, 풍요, 자식에 대한 사랑, 욕심, 만족, 욕망, 질투, 체념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감정이 잘 버무려져 있다. 인생이란 질문에 해답을 찾거나 혹은 그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정을 왕룽의 인생사에서 엿볼 수 있다. 사상을 덧입지 않은 중국인다운 인물들, 중국의 시장과 들판 풍경,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보편적 삶을 읽어낼 수 있는 생활사 소설이기도 하다.
대지는 어머니이자 생명이다. 반면 제도와 정치가 서민에게 밥을 먹여주고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에 의문을 가져본다. 변하지 않고 생산하는 땅의 의미가 재산으로서의,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만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땅을 일구고 가꾸는 노동과 그 보답으로서 생산의 소중함과 땅의 가치가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을볕 아래 익어가는 벼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들판 사이를 걸으며 엄마 품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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