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탈(脫)원전…그 후엔 어떻게?

탈핵비판

신고리 5, 6호기 공사현장.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신고리 5, 6호기 공사현장.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적한 마을. 원자력 발전소 덕분에 먹고산다고 믿는 주민들이 사는 이 동네에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다. 낡은 시설, 도사린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안전 불감증으로 원전의 상태가 위태로워진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까지 겹쳐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정부는 무기력하다. 마땅한 대책 없이 컨트롤타워도 마비되면서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극에 달한다. 발전소 직원들은 뒤늦은 대피령에 탈출하려는 주민들로 아비규환이 된 마을에 남아 고군분투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판도라'의 내용이다. 허술한 전개와 과장된 설정에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불러온 쓰나미가 덮치면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의 기억이 생생한 관객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올 5월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도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고리 1호기 가동 영구 정지 기념식에 참석해 '탈핵'탈원전 시대'를 선포했다. 한 달 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에 관한 여론 수렴을 위해 출범한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20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되 탈원전 정책은 지속한다'는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원전 포퓰리즘?

탈핵'반핵론이 커질수록 에너지 정책의 급전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책 '탈핵비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하면서 우리 원전을 멈춰 세우려면 핵 대피 민방공 훈련이라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이정훈 외 33명이 썼다. 책 기획자는 책 출간을 위해 원고를 청탁하자, 2명을 제외한 모두가 흔쾌히 수락을 했다고 밝혔다. 불이익을 두려워한 5명은 '무명씨'로 이름을 감췄다.

책은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에서 시작한다. 자원 빈국,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의 역사를 개척하고, 산업 발전을 견인한 고리 1호기의 '퇴역'을 앞두고 장문희 교수는 탈핵 선언을 비판한다. 글에는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비판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교차해 실은 두 글은 대조적이다. 하나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이고, 다른 하나는 고리 1호기 기공'준공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연설문이다. 수력'화력 발전을 대체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1971년과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라는 대안이 더 생긴 2017년은 상황이 다르다. 국민의 자각도 다르다. 그럼에도, 책은 원자력 발전의 효율에 집중해 50년 세월을 간과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인 주장만을 펼치는 건 아니다. 탈핵과 탈원전을 필두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바꾸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민주적인지, 또 현실적인지 조목조목 따진다. 탈원전은 국가 에너지 정책이므로 대통령의 한마디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실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자력 진흥과 육성, 시설 설치와 관리'감독'배상에 관한 법률 등 원자력에 관한 수많은 법률이 그랬듯, 탈원전도 법의 테두리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성에 기초한 타협과 협의의 기구지만, 포퓰리즘의 우려를 안고 있다. 저자들은 탈원전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전문가가 아닌 집단에 맡김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하고 책임을 회피할 출구를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혼란만 더할 탈원전 정책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고리 1호기가 폐쇄되기 전인 지난해 1년간 원자력 발전량은 20만7천890GWh로 전체 연간 발전량의 37.5%를 차지했다. 저자들은 탈원전과 신재생을 택하면서 탈석탄을 하지 못한 독일을 예로 들며 탈원전이 오히려 환경친화적이라고 말한다. 또 현재 수준처럼 LNG와 대체 에너지 발전소 가동률이 20%대에 머무는 한 전기요금 폭등은 불 보듯 뻔하기에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탈원전 정책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신규 건설 계획 폐지에 따른 매몰비용은 둘째치고라도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 연간 19조원 상당의 LNG를 수입해야 한다. 탈원전이 이뤄지면 원전 수출의 길이 막힌다. 책은 쏘나타 100만 대 수출과 맞먹는 효과를 낸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는 기적으로 끝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로 건설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도도 추락한다고 이야기한다. 계속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는 다른 나라에 밀려 수출의 길이 막히고, 대체 발전량이 에너지 소비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측한다.

저자들은 원전이야말로 탄소 배출 감축,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안전한 원자로가 원전 강국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선을 넘은 북한의 핵 도발에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 필요성을 역설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핵보유국이 될 수 없는 사정을 고려해 원자력추진잠수함이 필요하다는 것.

원전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내 집 앞 원전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대책 없이 탈원전을 하겠다는 정부에 대한 비판 대신 대안이 담겼으면 어떨까 싶다. 책에는 경주 지진 이후 계속된 지진 불안, 원전 부품 납품 비리, 격납고 부식 및 부품'시설 노후화 등 가동 중인 원전 관리에 대한 제언이 빠졌다. 일방적인 탈핵도, 조건 없는 탈탈핵도 석연치 않은 이유다. 304쪽, 1만7천원.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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