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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시민들 직접 모금, 교토에 '윤동주 기념비' 건립

28일 일본 시민들이 만든 단체
28일 일본 시민들이 만든 단체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가 일본 교토(京都)부 우지(宇治)시의 우지 강변 인근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기념비 '기억과 평화의 비' 제막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교토(京都)의 한 시골 마을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기념비가 시인의 일본 '팬'들에 의해 세워졌다.

교토 우지(宇治)시 지역 시민들이 중심인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 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8일 우지천(川) 신핫코바시(新白虹橋) 기슭에서 '기억과 화해의 비'(記憶と和解の碑)를 제막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적힌 기념비는 교토부(府) 내에만 도시샤(同志社)대학과 교토조형대 등 2곳에 이미 있다. 도시샤대학은 시인이 다녔던 대학교며 교토조형대는 시인의 하숙집이 있던 자리다.

이번에 설립된 기념비는 일본의 대학 캠퍼스 밖에 세워진 윤 시인에 대한 첫 번째 기념비다. 크기(가로 120㎝'세로 175㎝'폭 80㎝) 역시 가장 크며,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직접 모금을 하고 힘들게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우지시는 현존하는 윤 시인의 마지막 사진이 촬영된 장소라는 점에서 시인과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도시샤대학 재학 중이던 윤 시인은 1943년 6월 대학 친구들과 함께 송별회를 한 뒤 우지천 아마가세쓰리바시라는 다리 위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 사진은 1995년 NHK와 KBS가 공동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제작 중 함께 사진을 찍은 친구의 소지품 속에서 발견됐다. 윤 시인은 사진 촬영 한 달 뒤인 1943년 7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송몽규)와 조선 문화와 민족의식 고양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1945년 2월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숨졌다.

한반도와 일본의 화강암 2개로 만들어진 '기억과 화해의 비'에는 윤 시인이 1941년 모교 연희전문학교의 학우회지 '문우'에서 발표한 시 '새로운 길'이 한글과 일본어로 새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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