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말의 품격

얼마 전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여전히 뒷말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결정의 과정이 이전보다 '품격'이 있었다는 점이다. 야당에서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무책임하다거나 경제적 피해를 책임지라는 논평을 내지만,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결정과 같은 방식이 아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아마 정부는 정부안을 밀어붙이고, 친정부 언론이나 단체, 댓글 부대 등을 동원하여 여론전을 폈을 것이며,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격렬한 시위를 했을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만 컸을 뿐 진정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품격'이 있다는 것은 상황이나 기대하는 정도에 맞는 수준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기대하는 정도'는 바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 힘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관련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판단 능력이 있다고 가정을 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시대를 지나 사회가 이만큼 발전해 온 것도 그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품격이 없는 말은 일단 큰 소리를 내면서, 원색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욕하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는 것이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똑같이 품격 없는 말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점점 해결 방법은 멀어지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철천지원수가 되는 일이 많은데, 대부분은 품격 없는 말에서 시작된다. 신라시대 설총은 신문왕이 인사를 잘못하는 것에 대해 '화왕계'라는 우화를 지어 왕을 일깨웠다고 한다. 만약 그때 왕에게 "주위에 간신배들이나 모으고 말이야, 왕 노릇 똑바로 하십시오." 하고 큰소리를 쳤다면 왕이나 주변 신하들은 그 말을 듣기는커녕, "저, 저 미친놈, 어느 안전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역정을 냈을 것이다. 설총은 상대방을 비판하더라도 품격 있게 우회적으로 풍자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는데 모든 사안에 대해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을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엄연히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있는데, 다른 경로를 통해 결정을 한다는 것은 낭비 요소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공론화위원회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우선 말의 품격부터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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