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이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상감마마! 세자빈께옵서 원손 아기씨를 순산하셨습니다."
세종은 반갑게 물었다. "정말이더냐! 그래 원손은 어떠하더냐?"
"원손 아기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자선당을 쩌렁쩌렁 울리니 참으로 기운차시옵니다."
"올해는 참으로 경사가 많구나. 김종서 장군이 변방의 오랑캐를 무찌르고 육진을 완성하더니, 오늘 또 이렇게 원손이 탄생했으니 이런 경사가 또 있겠느냐! 하늘이 이 나라에 큰 복을 내리심이로다. 그래 아기가 크더냐?"
"아기씨 몸이 크시고, 울음소리 또한 웅장하시어 삼칠일은 지내신 듯하옵니다."
세종은 크게 웃으면서, "기쁜 일이로다. 경사스러운 날이로다. 내 오늘 대사면을 행하여 조선팔도의 죄수를 모두 풀어주려 한다. 도승지를 들라하라"고 명했다.
◆장태 절차를 고하다
세종의 명을 받은 도승지는 "상감마마께서 명하셨노라! 팔도에 1천 명의 죄수들을 사면하고, 전국의 대찰마다 원손의 무병장수를 길이길이 축원하는 제사를 베풀지어다. 이제부터 사흘 동안 짐승을 죽이는 일을 금하고, 원손의 탄생하심을 온 백성이 경하케 하라. 이어서 관상감은 조선팔도의 길한 곳을 엄중히 선택해 태봉지를 선정하고, 원손 아기씨의 귀한 태를 소중히 봉안하여 장태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모든 일에 어긋남이 없이하라"며 어명을 받들었다.
도승지는 또 "유서, 판중추원사를 안태사에 명하노니 왕손의 태실 봉안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며, 봉인된 부를 내리니 현령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채붕은 화려하게 하지 말 것이며, 수령들과 백성들의 생업에 지장 없이 백성 동원에 무리 말라. 내 너에게 이르노니, 장태는 자고로 나라 안녕을 보장하는 중하디 중한 업무이니 차질 없이 완수하여 종묘사직을 평안케 하라"고 명했다. 이어 도승지는 "안태사는 앞으로 나와 상감마마께 장태 절차를 고하시오"라고 했다.
1441년. 왕세자 이향(李珦, 문종)이 어렵게 아들을 얻었으니, 훗날의 단종이다. 왕세자의 나이 서른이 되어가도록 후사(後嗣)가 없자 세종은 근심이 많았다. 그러한 가운데 손자를 보았으니, 궁궐에는 겹경사로 웃음꽃이 만발했다.
내의녀 영이와 단이는 사흘째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거친 음식과 말을 삼가고, 남자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 동쪽 하늘을 보며 절을 한 다음 두 손을 모아 간곡히 빌고 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원손 아기씨의 태를 무사히 장태지로 옮겨 무병장수하시고, 종묘사직을 굳건하게 지키게 해주십시오."
내의녀 영이와 단이는 원손 아기씨의 태를 씻어 태 항아리에 담는 일을 맡았다. 원손 아기씨가 태어난 지 7일째 교태전에서는 태를 씻어 태 항아리에 담는 세태의식이 행해졌다. 영이는 물동이에 월덕(月德) 방향(길한 방향)의 물을 길어 교태전으로 들어오고, 단이는 교태전에 들어가 원손 아기씨의 태를 내온다.
산실의관은 옆에서 "하나요, 둘이요, 셋이요…"라며 숫자를 세고 있다. 산실의관의 말에 따라 영이가 길어 온 깨끗한 물로 원손 아기씨의 태를 100번씻었다. 깨끗한 물에 100번을 씻고 다시 항온주에 씻은 태를 기름종이에 싸고 다시 비단보자기로 싼다. 영이는 비단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싼 태를 인화상감기법을 사용해 꽃무늬를 상감한 분청사기로 만든 작은 항아리에 담았다. 태 항아리는 뚜껑의 연꽃 봉우리형 꼭지에 네 곳의 구멍을 뚫고, 동체에는 네 곳의 구멍을 가진 돌출 부위가 있어 사귀호라고 한다. 영이는 작은 항아리에 태를 넣기 전 밑바닥에 '개원통보'(開元通寶)라는 엽전을 글자가 위로 향하도록 넣었다. 이는 '으뜸이 열린다'라는 뜻이 원손 아기씨에게 전달되도록 축원하는 의미이다.
단이는 태가 담긴 작은 항아리를 대전차지승전색에게 전했다. 대전차지승전색과 산실의관은 큰 항아리 바닥에 흰 솜을 깔고 다시 작은 태 항아리를 넣고 작은 항아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솜을 꼼꼼하게 채워 넣었다. 뚜껑 주변은 엿을 둘러 움직이지 않도록 봉합했다. 붉은색 끈으로 큰 항아리 입구를 묶고 목패를 매달았다. 목패 앞에는 '정통(正統) 6년 신유 4월 23일 진시에 태어난 원손 아기씨의 태'라고 쓰고, 뒷면에는 차지승전색과 산실의관, 승전 내관 이름을 각각 적어넣었다. 태 항아리는 월공방으로 옮겨져 5개월 후 태봉지가 정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장태 길지를 정하다
9월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날 강녕전에서는 원손 아기씨의 태봉지 낙점 및 교지가 선포됐다. 도승지가 아뢰었다. "상감마마! 관상감 상토관이 왕자 아기씨 장태의 후보지 3곳의 단자를 올렸습니다. 장태지를 낙점하여 주시옵소서."
세종이 "장태지를 말해보라"고 하자, 도승지는 "관상감에 있는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해보니 그 가운데 좌향(坐向)이 길리(吉利)한 곳은 오직 경상도(慶尙道) 성주목(星州牧) 치북이십리 선석산(禪石山) 을좌신향(乙坐辛向)의 자리와 충청도(忠淸道) 보은현(報恩縣) 내속리(內俗離) 아래 을좌(乙坐)의 자리와 음성현(陰城縣) 북쪽 오리 밖의 방축동(方築洞)의 미좌(未坐) 자리 3곳뿐이었습니다. 구례(舊例)에 따라 관상감의 상지관(相地官)을 보내어 간심(看審)해 본 뒤에 망단자(望單子)를 갖추어 올리오니 왕자님의 장태 길지를 품하(稟下)하시기를 청하옵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세종이 "왕자들의 장태 길지를 경상도(慶尙道) 성주목(星州牧) 치북이십리 선석산(禪石山) 을좌신향(乙坐辛向)의 자리로 완정(完定)하라"고 명하자 이어 도승지는 "교명이 있겠습니다"고 했다. 이 말에 좌통례가 무릎을 꿇고 복창하자 모든 관원들이 무릎을 꿇었다. 교지를 받은 도승지는 큰 소리로 반포한다.
"유사에게 명하노니 왕가 자녀들의 태실이 여러 곳으로 분산돼 백성들의 경작지를 잠식하고, 각 고을 수령들과 백성들의 노고 또한 과중하다. 내 이에 이르노니 나라에 복되는 길지를 점치고 살피어 보니 성주목 북쪽 이십리 선석산 산등성이에 대군과 여러 군의 태를 갈무리하게 하고 각각 돌을 세워 표하게 하라."
이어 도승지는 원손 아기씨의 태를 안전하게 호송하고 봉안하는 안태사 이하 관리들을 임명하고 교서를 내린다. 교서를 받은 관리들이 세종께 예를 올리고 전 교관은 국왕이 내린 교서를 낭독한다. 세종의 교지를 받은 도승지는 원손 아기씨의 태 항아리를 경북 성주로 옮기기 위해 강녕전으로 갔다. 승전 내관이 월공방에 안치돼 있던 원손 아기씨의 태 항아리를 들고 강녕전에 설치된 막차로 온다. 안태사 등 장태담당관리들이 막차 앞에 도열을 하고 섰다. 이어서 도승지가 태 항아리를 옮길 수 있도록 설치된 막차에 와서 안태사에게 태 항아리를 건넸다.
안태사는 태 항아리를 받아 붉은색 보자기와 노루가죽으로 싸서 함 속에 넣어 누자에 안치했다. 원손 아기씨의 태가 경복궁을 떠나기 전 세종은 하늘에 제의를 올린다. 안태사 행렬이 경복궁을 출발해 광화문을 나선다.
'둥! 둥! 둥!' 북소리에 맞춰 대취타의 풍악이 한양에 울려 퍼진다. 장태행렬의 맨 앞에는 원손 아기씨의 축원을 바라는 만장이 서고 뒤에는 힘찬 기상을 보이는 말 두 마리가 따른다. 이어 원손 아기씨의 태를 담은 태 항아리 뒤로 문무백관들이 따른다. 장태행렬이 100m에 이른다. 세종은 광화문을 나서는 장태행렬을 향해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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