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일호의 에세이 산책] 학교 가지 마라

요사이 아이들은 유치원 입학 전부터 귀가 따갑도록 '공부해라' 소리를 많이 듣는다. 별을 보고 학교 가고 별을 보고 집에 오는 중'고등학생은 말할 필요도 없고, 취직시험에 매달려 있는 대학생, 심지어 취직 재수생까지 '공부해라' 소리를 많이 듣고 산다.

우리 때는 '공부해라'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학교 가지 마라' 소리는 많이 들었다. 농번기 때는 학교 안 가는 날이 많았다. 그 때문에 6년 개근상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농민이 70%인 시절,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은 소밖에 없던 시절,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가 오면 농촌은 정신이 없다. 보리 베기와 모심기, 특히 가을 추수기 때는 일 년 중 가장 바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일 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벼 베기가 한창인 지금쯤이면 집집마다 볏단을 쌓아놓고 새벽부터 탈곡기 소리가 요란했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사립문을 나서면 뒤통수에 '학교 가지 마라!' 소리가 귀에 박힌다. 순간 오늘 '죽었다' 생각부터 먼저 났다. 그때는 부모님의 명령을 한 번도 거역해 본 일이 없고, 명령과 동시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갈 때, 집에 있을 때, 일할 때 옷이 따로 없기 때문에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어린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탈곡한 짚단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일이었다. 나는 같은 행동을 하는 작업을 싫어했다. 일테면 방아 찧기, 김매기, 두부 만들 때 맷돌 돌리기 등이었다. 평소에도 일손 돕기는 끝이 없었다. '소 먹이라' '꼴 뜯어라' '물 길어 오느라' '소죽 끓여라' 등. 짜증이 많이 나지만 참아야 했다.

그때는 집집마다 소가 있었기 때문에 꼴 뜯기가 정말 힘들었다. 지금은 가는 곳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것을 보면 '소먹이면 좋을 텐데…' 하며 그때를 생각하게 한다. 심심하면 우리는 닭싸움, 소싸움을 했다. 소를 산에 올려놓고 씨름도 하고, 공기놀이 고누놀이를 하다 보면 서산에 해는 기울고 꼴은 뜯어야겠고, 버드나무, 뽕나무 등을 후려쳐서 꼴망태에 담아오면 농땡이 친 것이 금방 탄로 났다.

해는 지고 어두워 오는데 산에 올려놓은 소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재산목록 1호인 소가 없어졌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그러면 협동심이 대단한 동네 사람들이 함께 소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한 가지 희한한 것은 소는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쌍묘가 있는 곳에 누워 끝까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배가 고파도, 더워도, 추워도,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소보다 더 고생하다 죽는 짐승은 없다. 늙어 도살장에 가면 마지막 눈물을 흘린다. 죽어서도 버릴 게 없는 것이 소다.

경운기라는 농기계의 출현으로 농촌에 기적이 일어났다. 지게가 사라지고 소가 사라졌다. 기계화된 영농은 농번기를 사라지게 했다. 4차 산업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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