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벌초 때마다 차를 이용해 산 밑자락까지 다가갔다. 그런데 늘 이용하던 농로가 올해에는 막혀 있었다. 수십 년간 지나다닌 길이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살펴보니 '접근 금지. 사유지'라는 팻말이 있었다. 자기 땅 일부가 수십 년째 도로로 사용되는데도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 억울했던 땅 주인이 '실력 행사'에 나선 듯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길을 막는 행위는 자기 땅이라도 불법이다. 더구나 그 길이 사유지가 아닌 공공 도로라면 정상이 참작될 여지조차 없다.
지난 8월 충남 부여의 한 마을 주민들이 장례 차량을 3시간이나 막고 통행료 명목으로 350만원을 뜯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져 공분을 샀다. 유족들은 버텼지만, 망자의 시신이 부패될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고 합의를 한 뒤 겨우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사건의 전말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마을 주민들은 돈을 돌려주고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9월 인근의 한 마을에서도 마을 청년회 간부들이 장의차를 막고 통행료 500만원을 요구한 사건도 드러났다. 청년회 간부들의 횡포 때문에 유족들은 "나를 절대 불구덩이에 넣지 말라"는 망자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시신을 화장했다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마을에 장례가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도왔다. 상여가 산길을 가다가 멈추면 유족들은 상엿줄에 돈을 매달았다. 저승길 노잣돈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상여꾼들이 나중에 술이라도 따로 한잔하라고 주는 돈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상부상조 정신이 이상하게 변질돼, 장례 차량을 가로막고 '삥'을 뜯는 황당무계한 일이 오늘날 시골에서 벌어진 것이다. 백주 대낮에 길을 막고 통행세를 내라는 것이 옛날 산적 떼의 행각과 무엇이 다를까.
도시 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시골 인심 좋다는 것은 옛말이다. 귀농'귀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현지인들과의 적절한 관계 설정이다. 너무 멀리하면 말도 안 되는 온갖 텃세를 감수해야 하고, 너무 가까운 심리적 거리를 허용하면 시도 때도 없는 간섭 때문에 사생활 보장이 안 된다. 농촌 인구 절벽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나라와 지자체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귀농'귀촌 장려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자금을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지인들과 귀농'귀촌인이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는 환경과 풍토를 조성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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