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구한말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대구 최초의 세계기록유산이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계승'발전을 목표로 대구 시민주간(매년 2월 21~28일)을 선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쳐온 대구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과 연계,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세계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대구 최초, 대한민국 14번째 세계기록유산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국내 14번째이자 대구에서는 첫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기록물은 국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진행된 국채보상운동 전 과정을 보여주는 총 2천472건의 기록물로 구성됐다. ▷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기록한 수기 12건 ▷운동의 확산과 파급을 적은 수기 75건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일제 기록물 121건 ▷언론 보도 2천264건 등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최초의 시민운동, 국가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부문화운동, 여성'학생운동, 언론캠페인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높다"며 "국가 부채를 국민이 대신 갚고자 한 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방해를 뚫은 쾌거?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의 방해였다.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고 유네스코 최대 후원국인 일본이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은 9.7%에 달한다. 실제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결국 일본의 방해 공작 등에 의해 등재가 보류됐다.
김영호 국채보상운동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등재를 추진하면서 실무팀이 제일 걱정했던 점이 일본이 유네스코에 강한 압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유네스코 자문위원 등을 상대로 국채보상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또 "일본과의 대립관계를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많은 일본인들을 초청해 국채보상운동의 순수함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김영호 공동위원장은 이어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인구 1천500만 명 중 400만 명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순수 국민 기부운동이라는 점이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실무팀이 작성한 보고서 역시 그 어떤 보고서보다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 등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전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어떤 가치?
전문가들에 따르면 나라를 빼앗긴 뒤 엄청난 부채까지 진 당시 우리나라 남성들은 술과 담배를 끊고, 여성은 반지와 비녀를 내놓았다. 기생과 걸인은 물론 도적까지도 의연금을 내는 등 전 국민의 25%가 국채보상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국가가 진 외채를 갚음으로써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한 것이다.
이런 국채보상운동은 영국 언론인이 한국에서 발행하던 영어신문을 통해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해외 유학생 및 해외 이주민이 외국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통해서도 해외로 알려졌다. 특히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국채보상운동 소식이 전파되면서 전 세계에 확산됐다. 한국과 같이 외채로 시달리는 다른 피식민지국에 큰 자극이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중국(1909년), 멕시코(1938년), 베트남(1945년) 등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여러 국가에서도 한국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경북대 엄창옥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이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운동과 비교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으며, 가장 긴 기간 동안 전 국민이 참여한 국민적 기부운동"이라며 "당시의 역사적 기록물이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도 손잡는다?
대구시는 앞으로 북한과 공동으로 당시 관련 기록물을 찾는 데 노력할 방침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가 호전된다면 공식 루트를 통해 남북 공동 기록물 찾기운동을 벌일 계획"이라며 "이런 데 쓰려고 그동안 남북협력기금을 만든 게 아니냐. 통일부와 협의해 남북협력기금을 가장 의미 있게 쓴 첫 사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영호 공동위원장도 "그동안 중국 연변대학 교수들과 많은 접촉이 있었다. 이들의 중재를 통해 북한 당국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남북이 공동으로 찾자는 메시지를 전했고, 상당 부분 긍정적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며 "오히려 북한이 더 적극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조만간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공동 심포지엄 등 다양한 채널로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시는 이와 함께 연내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해 대시민 보고회와 비전발표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아카이브 조성을 위해 조만간 기본계획 수립 용역도 발주한다. 아카이브 조성안에는 '도서관+기록관+박물관' 형태의 복합문화시설로 조성, 교육'체험프로그램 운영 및 국제세미나'기념사업 기획운영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시는 설명했다.
대구시 김동우 문화예술정책과장은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세계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대선 공약"이라며 "정부 정책사업과 연계해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세계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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