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북쪽에서 온 전화

여름이 막 끝나갈 무렵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중후한 목소리의 남성이 나를 확인하면서 신문에서 읽은 글 내용을 짧게 이야기했다. 차분히 말씀하시는 품새가 예사 분은 아닌 것 같아 어디냐고 여쭤보니 '북쪽'이라고 했다. 북쪽? 잠시 혼란스러웠다. 탈북민인지 서울인지 안동이나 영주쯤인지 아니면 대구 북구에 사신다는 걸까? 선뜻 떠오르지를 않아서 머뭇거리는데 우리 집 뒷집, 북쪽에 사시는 할아버지였다.

작년 연말에 이사를 온 후 이웃에 살면서 찾아뵙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하얗고 교장 선생님 같다는 기억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딱 한 번, 지난봄에 집 뒤뜰에서 꽃밭의 풀을 뽑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호박 몇 그루를 심으셨다. 그때 통성명한 적이 있었다.

전화기 저편의 할아버지께서는 여름에 노랗게 핀 호박꽃을 구경했느냐고 물으시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 짬을 내어 국수라도 한 번 먹자고 하셨다. 또 당신도 어느 기업체의 사보에 글을 기고하면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한동안 먹먹했다. 내가 사람 사는 동네에 이사를 왔구나.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삼십 년이나 살았어도 내게 여름날, 뙤약볕을 이긴 호박꽃 구경했느냐고 물은 사람이 없었다. 물론 국수 한 그릇 하자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곳, 주택단지로 이사 온 후에는 이웃이 생겼다. 모두가 바쁜 도회지 생활에서 오가며 인사를 나누기에는 아파트나 주택이나 매한가지인데도 주택에서는 골목이 있어서인지 드나들며 눈인사라도 할 수가 있다. 하얀 백발의 노신사는 앞집 젊은 새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을 것이다. 호박잎을 따면서도 꽃밭에 물 한 번 주지 않고 내팽개친 새댁을 게으르고 무딘 사람으로 '요새 것들'이라며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신문을 핑계로 통화할 수 있었다. 물론 어르신을 한 번 대접하겠다는 인사만 하고 지금까지 뵐 수가 없다. 사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근엄한 어른이 뒷집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눈 부라리며 고함지르는 울퉁불퉁 근육질의 사나이가 사는 것보다 백배 나았다. 또 뾰로통하고 앙칼지게 생긴 여자가 찬바람 쌩쌩 날리며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 언제 한 번 그 어른을 뵙고 학생들이 있는 앞집에서 좀 시끄럽더라도 잘 봐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희끗희끗한 노신사께서 친히 전화까지 주시니 반가운 일이었다.

북쪽에서 온 전화 이후 나는 자꾸 뒤꼍에 신경이 쓰였다. 혹시 지저분하게 쓰레기가 날리지는 않는지, 라일락꽃이 피고 지고 묵은 낙엽이 뒹굴지는 않는지 세워둔 주차는 비뚤지 않은지 등. 또 가끔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 빙 돌 때도 맨발로 저벅저벅 다니지 않는다. 언제 노신사를 만나더라도 앞집 여자의 신선함을 잃고 싶지 않다. 북쪽에서 온 전화는 나를 가다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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