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축허가 눈치보는 대구 區政…반발→반려→소송→허가 '악순환'

지난달 24일 대구 북구 침산코오롱하늘채2단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예식장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김병훈 기자
지난달 24일 대구 북구 침산코오롱하늘채2단지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예식장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김병훈 기자

대구 구'군청들이 각종 시설 건축허가 신청에 대해 '반려 뒤 허가' 과정을 반복, '눈치 보기' 행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주민과 사업시행사 간 갈등이 빈번해지자 일단 주민 손부터 들어준 뒤 사업시행사가 이의를 제기하면 결국 허가를 내주고 있는 탓이다.

◆주민 눈치 보며 반려

북구청은 조만간 동호동 한 장례식장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줄 예정이다. 지난 5월 장례식장 건축 허가 신청이 접수되자 구청은 지난 9월 사업시행사에 '허가 반려'를 통지한 바 있다. 명목상 이유는 건축 부지 앞 도로구역에 대한 해석상 이견이었다. 불복한 시행사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북구청 관계자는 "국민고충처리위가 장례식장 건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구청 안팎에선 인근 주민들이 장례식장 건축을 반대하자 법적 문제가 없었음에도 반려를 결정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건축 심의가 진행 중인데도 사실상 반려를 통보한 경우도 있다. 배광식 북구청장은 지난달 24일 침산동 예식장 건축 반대 집회에 나와 "시행사와 주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건축 허가를 반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행사는 구청장 발언에 크게 반발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주민 합의가 심의 통과의 최우선 조건이라면 구청이 아닌 주민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으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북구청 관계자는 "일방적 주민 눈치 보기가 아니다. 양측에서 민원이 들어와 언제나 난감하다"며 "시행사에는 주민과 합의를 독려하고, 주민에게는 행정소송에서 패하면 합의가 어렵다고 설득하지만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행정소송 끝에 백기

서구청은 동물장묘시설 허가를 반려했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 애견인이 지난 3월 상리동에 동물장례식장을 짓겠다며 건축 허가를 신청했지만 구청은 민원과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반려했다. 해당 애견인은 행정소송을 제기, 승소했다. 서구청은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

동구청도 반야월농협이 추진하는 장례식장 허가를 반려했다가 결국 행정소송에서 패했다. 구청은 반야월농협이 2012년부터 추진한 동구 괴전동 장례식장 건립을 주민 반대를 이유로 불허했다. 이후 반야월농협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구청은 상고를 포기, 허가를 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구청은 한 아스콘 업체와도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구청이 안심연료단지 내에 위치한 아스콘 업체가 안심공업단지로 이전하려고 신청한 건축 허가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아스콘공장에서 나오는 벤조피렌이 발암물질로 규정돼 있고 악취도 유발하기 때문에 주변 주민 건강 및 생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구청 결정에 불복, 지난 9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업체 측은 "대체 부지를 마련해주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회사 소유 부지로 이전하기로 했는데 구청이 이마저도 불허한 탓에 부득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동구청과 수성구청이 각각 3건, 서구청이 1건 등의 행정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해결책은?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공갈등 관리에 실패할 경우 극단적으로는 공동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방지하려면 법적 해결책보다 서로 존중하며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철 대구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행사 입장에서는 법적 하자가 없는데 착공을 못 하니 답답하고 주민들은 피해를 보니 답답한 것"이라며 "상반된 두 관점을 잘 봉합해줄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행정 당국이 해결 주체가 아닌 '갈등의 제3자'로서 원만한 타협과 해결을 위해 개입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조언했다.

문용갑 한국갈등관리'조정연구소 대표는 "실제 갈등의 본질은 '주민 개개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부재'에서 나온다. '예식장이 들어서면 교통체증이 심해진다'는 건 겉으로 표출된 구실일 뿐"이라며 "반발하는 주민 개개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공감해줄 수 있는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 그것이 행정 당국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9'11테러 당시 미국은 3천여 명의 피해자 1명당 사회복지사'심리치료사'공무원 등 5명으로 구성된 팀을 붙여 성공적으로 갈등을 관리해냈다. 갈등 관리의 본질은 서로 존중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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