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87㎞. 지난 9월 파주 신병교육대에 아들을 두고 내려온 거리다. 새벽밥을 먹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는 아들을 싣고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경부, 중부내륙, 중부 등 3개의 고속도로를 타고 장장 4시간 30여 분을 달려 파주에 도착했다. 군대는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마땅히 국방의 의무가 있기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겪어야 할 인생의 일부분이다. 군대 갔다 와야 철이 들고 남자다운 남자로 태어난다고 아들에게 말을 했지만 낯선 곳에 아이를 두고 오는 아비의 심정은 편치 않았다. 혼자 내려오는 길은 물리적으로도 멀었지만 아들을 두고 온 탓에 심리적 길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자나깨나 걱정하며 지내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요즘 군대가 많이 선진화되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자유롭던 가정과 사회를 떠나 조금은 갇힌 사회인 군대라는 테두리에서 지내는 아들을 생각하는 안타까운 심정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긴 휴식이었던 연휴 내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요즘같이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부모들의 가슴은 더더욱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신문과 방송에는 연일 두 미치광이 때문에 들썩이는 한반도 소식이 쏟아진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미치광이라고 부르면서 막가파 행세로 협상을 이끌려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구사하고 있다. 충돌하는 두 나라의 지도자가 한꺼번에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 한반도에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에 대응해야 한다고 전술핵 배치와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가 한강이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마다 한국은 몸서리친다'라는 글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는 기고에서 "한국인들이 뚜렷하게 알고 있는 하나는 평화가 아닌 다른 해법은 무의미하며 '승리'라는 단어는 공허하고 불가능한 구호라는 점"이라고 했다. 전쟁으로 최대 피해를 보는 이는 우리 국민이다. 우리가 평화 만들기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의 대립만이 부모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강원도 철원군 사격장 인근에서 사망한 병사의 사고 원인이 유탄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경우였다. 당초 도비탄에 맞아 숨졌다던 성급한 군의 발표도 그렇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는 사격장 관리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군의 기강 해이와 안전 불감증,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것이 국민 대부분의 여론이다. "사격훈련이 있다고 하는 날에는 온종일 불안해서 잠도 못 잘 것 같다"는 부모들의 말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런 군대를 믿고 어떻게 자식을 보낼 것이며 안보를 맡길 수 있겠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국군의 날 문재인 대통령이 장병들에게 전한 말이다. "장병 여러분에게는 국방의 의무만 있는 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고 성장해 가족의 품, 사회로 돌아가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대통령의 말이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 주었다.
어제 다시 320여㎞를 달려 파주에 갔다. 7주 훈련(추석연휴로 훈련이 1주 늘었다)을 마친 늠름한 아들에게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아들의 단단해진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군에서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전포고하는 사람은 늙은이다. 그러나 싸우고 죽어야 하는 이는 젊은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허버트 후버 미국 31대 대통령의 말이 새삼 생각났다. 위기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끝까지 평화를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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