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이 무(武)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가끔이지만, 현실에서 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글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 문장(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에서도 같은 말이 언급됨은 동'서가 대체로 문이 무를 제어한다는 것에 동의했음을 알게 한다.
7년간이나 이어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일기를 썼던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공(公)의 훌륭한 인격과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그분이 남긴 '난중일기'를 통해 우리는 당시 사건과 역사를 엿보려고 한다. 결국, 그분이 남긴 기록이 공의 업적을 구체화하고 공의 뜻대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이다. 공이 글을 모르거나 소홀히 하여 자신의 행적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면 그저 그런 무부로 회자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과 대척 관계에 있던 원균이 공과 같은 글을 남겼다면 지금과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고, 자기 입장을 대변할 많은 기회도 놓치게 된 것이다. 그만큼 글의 힘은 위대하고 크다.
6'25전쟁 때 한 어린 학도병이 썼던 일기를 통해 전투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절박한 상황이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군더더기 없이 작성한 어린 학도병의 글을 통해 우리는 그와 한 몸이 된다. 미국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W. 휘트먼의 시와 산문에서도 인간의 야수성, 그리고 삶과 죽음의 헛됨과 공허함을 생각하게 된다. 휘트먼이 남긴 시를 통해 인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전쟁의 명분과 속성을 확인하면서도,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결국 화해(reconciliation)를 통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이 전쟁을 막고, 첨예한 대립을 풀고 상생의 길로 나아가게 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다. 신라인으로 당나라에 유학했던 최치원은 황소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중국에서 벼슬을 얻기도 했다. 난을 일으킨 황소를 물리치고자 지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 얼마나 명문장이었던지, 최치원의 글을 읽은 황소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고 했다. 나는 글 또한 이와 같은 원리로 쓰면 좋으리라 생각해 본다. 가장 좋은 글은 누가 읽어도 물 흐르듯 읽혀야 한다. 다만, 문장과 문장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듯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들고, 단락과 단락이 글을 형성하는 데 어색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설득력과 호소력을 갖춰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바야흐로 가을이 절정이다. 너도나도 단풍놀이로 혼잡한 가운데 많은 분이 시심을 느낄 것이다. 모두가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좋은 글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그래서 더 절실히 필요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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