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화학물질에 중독되는가/로랑 슈발리에 지음/이주영 옮김/흐름출판 펴냄
중요한 미팅이 있다. 미리 맞춰놓은 알람에 덮고 있던 이불을 걷는다. 샤워실로 가서 폼클렌징으로 세안하고, 천연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건조한 계절이니 보디로션은 필수다. 기초화장을 하고 마스카라로 한껏 '자존심'을 추켜올린다. 지난 주말 새로 장만한 니트를 꺼내 입는다. 손목과 귀 뒤에 향수까지 칙칙 뿌리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여기에 커피전문점에서 갓 내린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 한 잔은 그야말로 패션의 완성이다.
평범한 일상이다. 여기 수명을 단축할만한 어떤 특별한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외출 준비에 걸린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우리는 수많은 화학물질, 그리고 유독물질에 노출돼 있다.
◆화학물질이 뭐길래
뉴스가 나올 때마다 떠들썩하다가도 실생활에선 곧잘 잊히는 존재에 대해 정리한 책이 나왔다. 영양학 권위자이자 프랑스 몽펠리아 대학병원센터 의사인 저자 로랑 슈발리에는 현대인의 삶 속에 건강을 위협하는 독소가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일상 속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에 화학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으며, 우리가 이 물질의 유독성에 어떻게 중독되는지 밝힌다.
책은 화학물질의 정의로 시작한다. 도대체 화학물질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는 뜻이다. 책에 따르면 화학물질은 '질량을 가지고 있고,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구성요소에 친화력을 가진 특별한 개체'로 자연 상태에서도 발견된다. 그래서 살면서 섭취, 접촉할 수밖에 없고, 일정 수준까지는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이런 화학물질은 다른 물질과 결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 환경호르몬, 살충제, 식품첨가물 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합성 화학물질로 건강을 위협하는 인자로 인식됐다. 이들의 특성은 A+B=AB가 아니라 'A+B=C'라는 데 있다. 인체에 들어온 화학물질이 예상 가능한 형태로 '혼합'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세포를 변형시켜 신경, 기관을 변형시키고 내분비계를 교란시킨다는 얘기다.
◆실험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저자는 일상 속 대표적인 합성화학물질을 나눠 밝힌다. 색소, 방부제, 유화제, 감미료 등 식품첨가물이 그 첫 번째다. 즉석 수프, 퓌레 등에 들어가는 산화방지제 BHA, 식품 포장에 쓰이는 알루미늄은 각각 내분비계를 교란하고 암을 일으키거나 소화기를 손상시키고 퇴행성 신경장애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인스턴트식품, 각종 가공육, 통조림 등 가공식품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올 8월 유럽에서 비가열 가공육(소시지)에서 E형 간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럽산 가공육 유통이 올스톱됐다.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가 퍼지는 것을 막고자 암모니아 처리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식욕을 돋우려고 색소나 인공향을 첨가하기도 한다. 플라스틱 용기와 식기, 냄비, 조리도구 같은 주방용품에는 비스페놀A나 멜라민, 폼알데하이드가 자주 검출된다. 대부분 열에 약해 유독물질을 내뿜는 물질이다.
숨도 마음대로 못 쉬고,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시는 세상이다. 매연과 흡연은 당연시되고, 조리와 소각으로 발생하는 다이옥신, 고리형 방향족 탄화수소 등도 암 발생 원인이다. 책은 식초, 레몬, 베이킹소다나 소금 등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프랑스와 달리 우리 수돗물에는 석회질이 적지만,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은 5%를 겨우 넘는 정도다. 수돗물 불신은 정수기와 생수 판매로 연결되는데, 저자는 생수보다는 수돗물이 낫다고 말한다. 시중에 팔리는 생수는 대부분 페트병에 담겨 있고, 플라스틱은 프탈레이트 등 다양한 화학물질로 만들어져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형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먹지도 않고 피부에 양보했던 화장품은 어떤가.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크림은 피부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비타민D 생산을 방해하기도 한다. 매년 바닷물로 흘러들어 간 선크림만 4천t에 달하는데, 이 탓에 전 세계 산호의 10%가 하얗게 탈색된다고 한다. 화장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음식보다 더 해롭기 때문이다. 소화액에 의해 유해물질 일부가 사라지거나 배출되는 음식과 달리 안전성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나노 성분을 포함한 화장품은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세안, 탈취(데오드란트), 보습과 클렌징, 안티에이징, 자외선 차단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화장 단계에다 향수, 색조 화장까지. 결국, 답은 유기농이고, 덜 쓰는 데 있다. 화학물질로 범벅된 저가 의류, 방화'내화 처리를 위해 가공을 거친 섬유도 친환경'유기농과는 거리가 멀다.
◆케미포비아에서 벗어나려면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 넣은 소금 알갱이 하나에 불과한 양으로도 충분한 위협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화학물질의 일상 침투는 통제 불능 상태에 가깝다. 편리와 이익을 앞세운 은닉 앞에 무릎 꿇을 수는 없다. 가려서 먹고 운동을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저자는 책 뒷부분에 로열젤리, 오메가3가 풍부한 식품 등을 추천한다. 또 수백 가지 합성화합물질의 이름과 이들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유독물질 가이드를 통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유해물질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은 떠들썩했다. 가습기 살균제, 발암 생리대. 살충제 계란, 간염 소시지 등. 스티로폼 컵라면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오고, 플라스틱 합성수지 도시락이 열에 약하다는 것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이런 위험성은 잊어버리기 일쑤다. 샴푸나 화장품의 뒷면을 일일이 확인하고 물건을 살 수는 없더라도 덜 위험한, 더 안전한 제품을 고르는 현명한 소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272쪽, 1만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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