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이레, 2004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이종갑 작
이종갑 작 'Forest-blue fog'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이레, 2004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하늘 높이 두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이 어디건, 어디로건 나를 데려다 줄 것만 같다. 가을을 타는 것일까? 사실 여행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데 말이다.

떠나는 것은 일상화가 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라도 쉽게 갈 수 있는 요즘, 우리의 마음속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기만 하고 밖으로는 잘 내비치지 않던 질문을 하나 던져보게 된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의 동기 내지 이유야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여행을 생각하고, 실행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데 거치는 여러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영국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왜 여행을 떠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는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가 사랑하는 '윌리엄 워즈워스, 빈센트 반 고흐, 존 러스킨' 등의 예술가를 안내자로 등장시켜 여행의 출발에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의 각 주제를 안내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해 봄 직한 것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간다.

우리가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18쪽) 늘 제기되는 한 가지 문제는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현실 사이의 관계이다.(19쪽) 알랭 드 보통은 그 관계의 틈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심리적인 것에서 찾고 있다. 즉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일까? 특히 여행을 떠나는 동기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접해보지 못했던 시각적인 요소, 즉 '이국적인 것'이라는 관념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를 떠나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라고 보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과 그 풍경을 이루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의문을 갖게 하고 그 의문의 답을 찾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 중에 흔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물이건 자연이 만들어놓은 웅장함이건 그것만이 지닌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 그 인상이 오랜 시간 동안 깊은 감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워즈워스는 '시간의 점'(210쪽)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행의 기억들은 '시간의 점'을 제외한 대부분을 잊게 된다.

그 잊힘이 아쉬워서인지 우리는 그 감동을 소유하기 위해 카메라에 담고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기념품을 산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으로 존 러스킨의 '말 그림' 그리기를 권한다. 피상적인 인상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그 아름다움의 실체를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오랜 시간 동안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나침판 삼아 어디로든 떠나보자. 떠날 때는 펜과 수첩도 함께 준비해서 운 좋게 '시간의 점'과 조우할 땐 말로 그림을 그려보자. 그 아름다운 순간이 오롯이 내 것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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