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자(가명'72) 씨는 며칠째 침대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던 지난 5월 양 무릎의 연골이 동시에 파열되면서 거동이 불가능해지면서다. 엄 씨는 한쪽 팔꿈치를 바닥에 댄 자세로 몸을 일으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엄 씨는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가려는데 무릎이 아파 일어설 수가 없었다"며 "병원에 가보니 양 무릎이 파열됐다며 수술을 권했다. 이후 나이 때문인지 쉽게 회복이 안 돼 아직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엄 씨가 다친 뒤 정신장애와 지체장애를 함께 갖고 있는 딸 이정은(가명'53) 씨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로 오른손을 움직일 수 없는 이 씨는 지능마저 일반인에 비해 낮아 엄 씨의 돌봄 없이는 정상생활이 쉽지 않다. 엄 씨는 "내가 건강해야 딸을 돌볼 수 있을 텐데 집안일을 하는 것조차 힘드니 큰일"이라며 "나는 몸이 불편해서, 딸아이는 장애가 있으니 불안해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얼른 낫도록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가족에게 차례로 다가온 시련
40여 년 전 남편이 지병으로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뒤 엄 씨는 오랜 시간 가장 노릇을 해왔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넉넉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두 남매를 대학까지 보냈지만 시련은 끝까지 엄 씨 가족을 괴롭혔다.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던 딸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엄 씨는 "딸이 대구를 떠나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니 병원에서는 오른손이 마비돼 평생 쓸 수 없다고 했고 정신장애도 이때부터 겪게 됐다"며 "너무도 암담했지만 평생 딸아이를 지켜주겠다는 생각만 하며 버텨냈다"고 회고했다.
돈을 벌겠다며 서울로 간 아들은 엄 씨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서울에 직장을 얻은 아들은 회사가 부도난 뒤 혼자 생활하다 신용불량자가 돼버렸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 몇 년째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엄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 씨는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번다고는 들었지만 그것도 몇 년 전 일이고 얼굴조차 못 본지 한참 됐다"며 "가난 때문에 가족이 찢어져 살게 됐다고 생각하니 서럽다. 아들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남편과 딸, 아들에게 찾아온 시련은 기어이 마지막 남은 엄 씨마저 쓰러뜨렸다. 장사를 접고 폐지를 줍던 엄 씨의 양 무릎 연골이 파열된 것. 수술 이후에도 평소에 앓던 골다공증과 겹쳐 자력으로 보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엄 씨는 "가족들에게 돌아가며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 한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라며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주말마다 마을 봉사를 다녔다. 더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지금은 우리도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 돼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 어렵지만 주변 도움에 힘내
위태롭던 엄 씨의 가계는 엄 씨가 병원 신세를 지자마자 급격히 기울었다. 현재 엄 씨는 딸의 장애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 노령연금을 합쳐 매달 90여만원을 받고 있지만 각종 세금과 방값, 딸의 장애인 돌보미 비용을 충당하고 나면 기본 생활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엄 씨가 폐지를 주워 생활에 보태왔지만 이마저도 끊기면서 오히려 수백만원의 병원비 지출로 당장 생활을 이어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이어온 봉사에 대한 보답일까. 엄 씨는 주변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많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엄 씨는 병원비 일부를 내지 못하던 차에 딸의 장애인 돌보미가 120만원을 선뜻 빌려줬고, 엄 씨의 입원으로 다섯 달째 밀린 방값에도 집주인은 재촉 한 번 하지 않았다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딸의 돌보미 선생님도 형편이 넉넉지 않을 텐데 선뜻 큰돈을 빌려줬고 매달 15만원의 방값도 다섯 달째 밀려 있는데 다행히 집주인이 걱정 말고 몸부터 챙기라고 배려해 주네요. 이렇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얼른 나아 폐지를 주워서라도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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