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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읽기] 편의점의 사회학

밥 먹고 세탁하고 은행일…나홀로족 원스톱센터

편의점 도시락이 직장인과 학생들의 점심 문화까지 바꿀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구 중구 계산동의 한 편의점에서 직장인들이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다. 매일신문 DB
편의점 도시락이 직장인과 학생들의 점심 문화까지 바꿀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구 중구 계산동의 한 편의점에서 직장인들이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다. 매일신문 DB

전국 4만개…하루에 15개 오픈

1인 가구·24시간 문화 늘며 호황

원조 일본 제치고 편의점 공화국

최저임금 오르면 일자리 감소 우려

근접 출점 경쟁에 가맹점주들 피해

음악·밥·책 프리미엄 가게도 출현

'편의점 만능시대'. 요즘은 한 집 건너 한 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편의점 매장 수가 급증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들어선 편의점 수는 약 4만 개. 2015년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편의점 15개가 새롭게 문을 연다고 한다. 한때 퇴직자들의 희망은 치킨집이었지만 이제는 '편의점'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워낙 많다 보니 편의점 속에는 우리 삶의 모습에서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가 담겨 있다. 편의점을 통해 2017 대한민국의 모습을 돌아봤다.

◆세계 최고의 편의점 공화국

원래 편의점은 일본이 강국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이 바로 최고의 '편의점 공화국'이라고 불린다. 인구수 대비 매장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인구가 1억2천500여 명인 일본의 편의점은 5만6천여 개로 2천200여 명당 1개의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5천100만여 명의 인구에 비해 편의점은 4만 개가 영업 중이다. 결국 인구 1천300여 명당 1개꼴로 편의점이 들어서 인구 대비 점포 수는 우리나라가 1.5배 더 많은 것이다. 3만여 개인 치킨 집과 비교해도 무려 1만 개가 더 많아 이제 대로변뿐 아니라 좁은 골목길에서도 편의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편의점이 이렇게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사회구조 변화의 영향이 크다.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어남에 따라 소용량 소포장 식품과 간편식, 편의점 도시락 혼밥족 등으로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

게다가 이제는 '편의점=먹거리'라는 틀에서 벗어나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하는 만능 매장으로 진화 중이다. 올 들어 일부 업체들은 세탁 서비스를 선보였고, 택배 관련 서비스는 이제 완전히 편의점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간단한 금융 업무도 볼 수 있다. 일선 영업지점이 없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편의점을 사실상 금융창구로 활용하면서, 몸집 줄이기에 나선 시중은행들도 편의점을 통해 체크카드 발급, 비밀번호 변경, 인터넷뱅킹 가입 등 간단한 서비스 제공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외에도 항공권 발권, 로커룸, 카셰어링, 전기차 충전소 등 편의점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원스톱 서비스센터' 역할을 수행 중이다.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편의점이 등장한 때는 1982년 11월. 당시만 해도 맞벌이보다 외벌이, 4인 가구가 기본이었기 때문에 장 보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전혀 맞지 않아 2년도 버티지 못한 채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편의점이 새롭게 부활한 것은 1989년 5월의 일로, 서서히 24시간 문화가 확산하면서 편의점이 동네 슈퍼마켓을 밀어내고 골목상권의 최강자로 등극하게 됐다.

◆편의점 속 이슈들

편의점 속에는 다양한 삶의 군상들이 모두 담겨 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살펴볼 수 있다. 그중 최근 급증한 것이 '혼밥족'들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취업준비생, 심지어는 급식카드를 사용하는 결식아동들까지 한 끼를 때우는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주머니 가벼운 이들에게 가장 편하고 간단한 식사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워낙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많이 늘면서 '맛없는 대충 때우는 음식'에 불과했던 편의점 도시락이 환골탈태하고 있다. 이제는 저렴한데 맛까지 최고라 '가성비 갑'이라는 평가가 많다. 심지어 '혜자롭다'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배우 김혜자를 모델로 한 도시락이 싼 가격 대비 맛과 질이 뛰어나서 이런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현재 '혜자롭다'는 단어는 '은혜롭다'의 비슷한 말로 통용되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도 '편의점'에 따라붙는 연관어다. 편의점 하면 떠오르는 '알바'. 하지만 내년도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인상되면서 알바생과 편의점주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편의점주들은 수익성이 낮아질까 봐 걱정이고, 알바생들은 수익성을 걱정한 편의점주들이 알바생 숫자를 줄여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최근에는 편의점 알바생들의 일자리를 최첨단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무인점포 경쟁이 시작돼 앞으로 알바 자리 구하기가 더욱 고달파질 전망이다.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계산은 물론이고 재고관리, 발주 등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그 외에 갑질 논란도 숙지지 않는 문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접 출점' 논란. 편의점 본사 입장에서는 매장이 많아질수록 가맹 수수료를 더 챙길 수 있지만,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 수익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는 이런 문제는 아랑곳없이 매장 수 늘리기에만 여념이 없다. 심지어 부산의 한 건물에 2개의 편의점이 들어서 '한 지붕 두 편의점' 사례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을을 보호하자'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착한 편의점 문화 만들기에 업체들이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편의점 매장 수가 워낙 많아지면서 차별화를 위한 고민들도 시작됐다. 최근에는 상권의 특성에 맞춰 음악이 흐르는 편의점, 밥 짓는 편의점, 책 읽는 편의점, 기품 있는 편의점 등 독특한 콘셉트로 무장한 프리미엄 편의점들도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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