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춘추는 고향 마을에서 시작되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길을 나타내는 선이 되고, 그 선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영남인의 젖줄로 일컬어지고, 강원도 황지(黃池)에서 솟아난 물방울이 골골의 물과 어울려 내(川)를 이루어 507㎞ 넘게 흘러 남해 바다로 스며드는 남한 제1의 강. 아득한 옛날 경북에만 13개나 되는 고대 나라들이 삶터로 삼았던 강. 일본의 조개 유물이 여기저기 발굴되고 한반도의 문화를 전파한 강. 일본의 왜구와 사신을 태운 배가 오르내리던 침략의 강. 소금과 곡식을 싣고 나르던 상선(商船)의 화려한 불빛이 멈추지 않았고, 부패한 관리와 지배층이 뱃놀이로 흥청댈 때 백성은 피눈물을 뿌려야만 했던 강. 뭍에서 지은 쌀과 온갖 농산물을 일본으로 공출당한 수탈의 강. 6'25전쟁에서 나라의 운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지금은 산업화의 터전이 된 은혜로운 강.
낙동강은 세월을 넘어 그렇게 흘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낙동은 상주(尙州)의 옛 이름 즉 낙양(洛陽)의 동쪽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졌다. 조선의 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설명이다. 낙동강은 낙수(洛水), 낙강(洛江)으로도 불렸다. 이는 가락(駕洛)의 동쪽에 있는 강으로 해석되는데, 초기 삼국시대 상주 함창에 고령가야가 위치한 것과 관련된 듯하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만큼 낙동강을 낀 영남인의 숱한 이야기와 애환이 서려 있을 만하다. 아울러 나라 안에서는 낙동은 곧 경상도, 영남을 나타내는 말로도 통한다. 본사가 1955년 7월 9일, 지령 3천 호 발행을 맞아 전국을 무대로 도약을 꾀하려 제호를 '낙동일보'로 바꾸려 한 일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런 낙동의 뭇 이야기를 담을 잡지가 서울에서 선보였다. '낙동춘추'라는 문예지이다. 지난해 10월 창간되고 지난달 2호가 세상에 나왔다. 지난달 28일 오후에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영로재(迎鷺齋) 고택에서 축하의 '작은 음악제'도 열렸다. 낙동강 주변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힌 낙동춘추에는 벌써 낙동강 주변 출신 여러 인사가 다양한 글을 선보였다. 공직(산업통상자원부)에 매인 몸으로 책 발간에 앞장선 정상천 편집 간사의 '고향(예천)과 낙동 지역 문향(文香) 진작과 정보 공유 그리고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뜻'이 가상하다. 낙동춘추로 즐거움이 넘치는 '낙동' (樂東)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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