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여론조사와 여론 왜곡

여론조사는 여론의 향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 왜곡된 조사 결과를 근거로 새 여론이 형성되기도 하고, 실제와 다른 여론이 '대세'로 인정받기도 한다.

가령 문재인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하자. 전체 국민 중 ①30%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②20%는 '잘 못하고 있다'고, ③20%는 '그저 그렇다'고, ④30%는 '모르겠다'고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전체 국민의 생각을 알 수는 없으므로 '가정'일 뿐이다.

여론조사 기관이 표본 1천 명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여론조사 응답률은 20% 안팎이다. 이 경우 여론조사 기관이 1천 명에게 전화를 걸면 20%, 즉 200명이 조사에 응한다. 이 정도 표본으로는 대표성을 보증할 수 없다. 전체 응답률이 20%인 상황에서 표본 1천 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5천 명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 때 덧붙는 '조사 대상자 1천 명, 응답률 20%'라는 문구는 5천 명에게 물어봤으며, 그중 20%인 1천 명이 답했다는 말이다.

그런 사정으로 5천 명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위의 ①②③④에 전제한 수치를 적용하면, ①'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국민은 5천 명 중 30%에 해당하는 1천500명, ②'잘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국민은 5천 명 중 20%에 달하는 1천 명, ③'그저 그렇다'고 평가하는 국민 역시 5천 명 중 20%에 해당하는 1천 명, ④'모르겠다'에 해당하는 국민은 5천 명의 30%인 1천500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①번 30% ②번 20% ③번 20% ④번 30%로 나오지 않는다.

응답자의 '충성도' 또는 '조직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충성도'는 매우 높다. 포털 사이트에 어떤 기사가 뜨면, 떼로 달려들어 '좋아요'를 누르거나 '화나요'를 눌러 댓글 선호도 순위를 확 바꿔버린다. 그런 경향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응답률을 50%,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그렇다'는 국민의 응답률을 각각 20%,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응답률을 5%라고 가정해보자.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기에' 응답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같은 응답률을 적용해, 5천 명에게 전화를 걸면, ①'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1천500명 중에서는 50%인 750명이 응답한다. ②'잘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1천 명 중에서는 20%인 200명이, ③'그저 그렇다'고 평가하는 1천 명 중에서도 20%인 200명이 응답한다. ④'모르겠다'고 평가하는 1천500명 중에서는 5%인 75명만이 응답한다.

각 항목별 응답자 수, 즉 ①750명 ②200명 ③200명 ④75명을 합하면, 1천225명이고, 각 항목별 응답자 수를 백분율로 나타내면 ①번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61.22%, ②번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16.32%, ③번 '그저 그렇다' 역시 16.32%, ④번 '모르겠다'는 응답은 6.12%가 된다.

전체 국민 중 30%만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가정했음에도, 응답률 차이로 원래 수치의 2배가 넘는 61.22%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적극 응해 실제와 다른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이런 점을 알고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한다. 그럼에도 실제와 다른 여론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정당이 구청장 후보나 시장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할 경우 해당 선거구 주민 중 여론조사에 반드시 응하는 충성도 높은 주민이 500명, 적게는 200명만 있어도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여론과 확 달라진다. 지지율만큼이나 응답률이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각자가 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여론은 왜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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