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오모테나시

귓속말은 남이 듣지 않도록 은밀히 건네는 말이다. 대화의 중요도는 말할 것도 없고 두 사람의 관계 등 깊은 친밀감이 그 바탕이다. 비교하자면 부부간 '베갯머리송사'처럼 은밀하고 말의 진실성이나 효력이 확실한 경우를 말한다.

개인 간 귓속말은 인간관계나 일, 주변 상황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국가 정상들의 귓속말은 국제 정치 상황이나 역학 관계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나 영향력이 훨씬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5개국 순방은 외교 관례와 국가 관계, 은밀한 막후교섭의 층위가 어떻게 다르고 구분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각국 언론은 요즘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한국, 중국 순방에서 드러난 현지 분위기나 정상 간 친밀도를 비교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첫 방문지인 일본 방문을 놓고 미국 언론은 아베 총리의 살가운 환대에도 'loyal sidekick'(충실한 조수) 등의 표현으로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특유의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를 부각시키며 양국 밀월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오모테나시는 2020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IOC 총회(2013년) 때 일본의 여성 아나운서가 후보지 설명회에서 언급한 후 크게 유행한 말이다. '시종 최선을 다해 완수한다' '성심성의껏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트럼프 방문에서 일본이 노리는 오모테나시는 단순한 환심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친밀감을 넘어선다. 미일 관계를 귓속말 관계로까지 발전시킨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중요한 것은 꼭 함께 나누자는 뜻이다. '아베는 간도 쓸개도 없다'는 말을 듣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빈인 트럼프 대통령을 성심성의껏 대접했다. 평택 미군기지까지 직접 가서 그를 맞았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년(8일) 축하 메시지도 여러 번 언급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무난한 환대 수준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어떻든 이런 환대에 트럼프 대통령은 "코리아 패싱은 없다"며 한미 동맹을 재확인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그제 '미일 정상이 대북 군사 옵션에 대해 논의했고 그 내용은 철저히 함구했다'는 일본 신문의 보도는 뒷맛이 쓰다. 우리 정부도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일 정상이 만나 중요한 귓속말을 나눴다는 점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상황은 아니다. 귓속말을 못 하는 한미 관계라면 그게 바로 '코리아 패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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