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러빙 빈센트

고흐의 죽음 자살? 타살?

정말로 특별한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는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고흐 특유의 화풍을 살린 그림체로 영화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유화로만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각본과 감독은 폴란드인 도로타 코비엘라와 영국인 휴즈 웰치맨이 공동으로 맡았다. 휴즈 웰치맨은 '피터와 늑대'라는 작품으로 2008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오스카 수상자이다.

폴란드 영화협회가 제작비를 지원하고, 애니메이션 동화로 쓸 유화를 그리려고 전문 유화가를 재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킥스타터의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했다. 총 6만2천450개의 프레임 각 장면은 캔버스 유화로 그린 것으로 반 고흐의 특유의 기법을 재현했다. 총 107명의 화가가 2년 동안 작업하여 만든 새로운 형식의 영화다. 기획에서 완성까지 제작 기간은 총 10년이 걸렸다.

그렇게 탄생한 애니메이션은 고흐의 푸른색으로 채색된 '별이 빛나는 밤'으로 시작해서 노란색으로 빛나는 '아를의 노란 집'을 지나,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의 혼란스러운 얼굴로 끝이 난다. '자화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 고흐가 만들어낸 굵은 붓의 터치와 찬란한 색들을 화면 가득 95분 동안 감상하는 황홀한 경험이다.

영화의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도 흥미롭다. 이야기는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로부터 시작한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던 화가 빈센트의 죽음 후 1년. 동생 테오와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던 빈센트의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지 못한 우체부는 아들 아르망에게 편지를 테오 가족에게 전하도록 부탁한다. 아르망은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장소로 찾아가 빈센트 주위의 인물들을 탐색하며 그의 죽음의 비밀을 풀고자 한다. 빈센트가 살았던 여관의 주인 딸 아를린, 한때 화가를 꿈꿨던 빈센트의 주치의 폴, 빈센트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었던 폴의 딸 마르그리트, 뱃사공, 화상 등이 차례로 빈센트에 관한 정보를 주지만, 그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한다.

프랑스 오베리에서 체류하던 37세의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잘랐던 이력이 있고, 스스로 권총을 쏜 후 제 방으로 돌아와 이틀 후 사랑하는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2011년에 출간된 '반 고흐: 그의 인생'이라는 전기에서 저자인 나이페와 스미스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반 고흐가 살해당했음을 주장함으로써 널리 퍼졌다.

'러빙 빈센트'는 아르망이라는 청년을 탐정 역할에 놓고, 그가 차례차례 빈센트 주변인들을 탐색하며 고흐 죽음의 실체를 밝혀내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영화는 오슨 웰즈의 고전 걸작 '시민케인'(1941)의 구성을 오마주한다. 아르망은 빈센트의 마지막 편지를 들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빈센트에 얽힌 일화를 들으면서 그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친다. '시민 케인'에서 주인공 케인의 마지막 한마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찾아 헤매는 기자의 행보처럼, 아르망은 누가 빈센트를 쏘았는지, 그리고 빈센트는 왜 "내가 나를 쐈으니 그 누구도 찾을 필요가 없소"라는, 범인을 감싸려는 듯한 말을 했는지, 그 의미를 찾아 헤맨다.

천재와 미치광이. 후대에 두 단어로 신화처럼 남은 고흐를 누군가는 미쳤다고 하고, 누군가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상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가 콤플렉스에 내내 시달렸다고 하고, 누군가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자연을 관찰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슬펐고, 사랑이 넘쳤고, 혼란스러웠고, 외로웠고, 그리고 감사했으며, 행복했다. 별이 빛나는 푸른 밤과 노란 해바라기와 꽃의 섬세한 떨림을 그렸던 남자. 성공을 눈앞에 두고 죽어버린 그의 삶에 대해 우린 알 길이 없지만, 거대한 슬픔과 소소한 행복을 붓에 실어 캔버스 위에 옮겼던 그의 성실한 행동으로 후대의 우리는 위로받고 위안을 얻는다. 슬픔을 위로해 줄 무기를 준 빈센트에게 무한한 감사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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