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 칼럼] 공정이 아니면 상식이라도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가 오늘 국회에서 결정난다. '장관 자격이 없다'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야권의 반대에도 보고서는 채택되고 장관 임명도 강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선거에 이겨 칼자루를 쥔 쪽이 밀어붙이겠다니 장관이 되기야 될 것이다. 그러려고 죽기살기로 선거를 하고, 돈과 시간을 쏟아부은 만큼 한편이나 친한 사람을 좋은 자리에 앉히려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선거란 게 좋은 자리,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것도 같다. 투자한 만큼 거두려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했으니.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재벌 문제에 천착하고, 부자 증세와 부의 불평등 해소 등에 목소리를 내온 홍 후보자이니 장관 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국무회의 '말석' 한 자리를 두고 세상이 떠들썩한 건 다른 이유가 있다. 야당의 트집 잡기 때문이 아니다. 홍 후보자 한 사람 장관 만들려다 우리 사회에 미친 해악이 너무 크다. 부모 잘 못 만났다고,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다고 좌절하고 분노한 청년들,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어서 미안한 부모들의 상처 난 마음은 치유할 길이 없다. 또 부의 세습, 권위의 세습, 직업의 세습을 넘어 신분의 세습으로까지 굳어져 가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에 무거운 돌을 하나 더 얹어 놓은 중압감은 또 어쩌나. 무엇보다 '공정사회', '공정경쟁'을 국정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문재인 정부가 한 일이라서 더 마음에 걸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회에서 '공정한 기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강조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대통령은 공정을 이야기하는데,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정부에서 '쪼개기 증여'와 '격세 증여'를 통한 부의 세습 과정을 합법적이고 상식적이라고 하니 찜찜하다. 대통령은 위에서 따로,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자들은 아래서 따로란 말인가.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과 소통하려는 문 대통령의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게 된다.

"아이들 외할머니가 한 일"이라고 강변하는 홍 후보자나 "도덕적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는 여권의 항변은 듣기 거북하다. 국민들도 그럴 기회가 있으면, 그 정도의 부가 있으면 홍 후보자 집안처럼 그렇게 하라는 건가? 못 먹거나 안 먹어서가 아니라 남보다 덜 먹거나 못한 걸 먹는 게 더 견디기 힘든 게 사람이다. '헬조선'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 공정하지 못한 학교, 공정하지 못한 나라 이야기인 걸 왜 모르나. 이들에게 '아 대한민국'을 부르라고 하는 건 차라리 고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 술 더 뜬다. "만일 기자 어려분의 장모가 고액의 재산을 물려주면 안 받겠는가? 홍 후보자를 비난하려면 기자 여러분도 기사를 쓴 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니. 아무리 급하고 뿔이 났다고 해도 그렇지. 그 천박한 인식 수준을 알 만하다. 물론 기자들도 청문회에서 털듯이 탈탈 털리면 두 손 두 발 다 들 사람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말하고 글을 쓸 때는 정의롭고 청렴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현실에서는 부정하고 부패하고 불의와 가까이하려는 기자는 많지 않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기자라면 누울 자리보고 발을 뻗는다.

그러니 불탈법은 아니었다고만 할 게 아니다. 신출귀몰한 편법에 대한 설명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반성 없는 강변은 국민들 울화만 치밀게 한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22.6%만 홍 후보자 임명에 긍정적이라는 국민적 상식 수준만 따라주면 된다.

한편에서만 사람을 골라도 좋다. 끼리끼리 좋은 자리 다 차지해도 괜찮다. 그러고 싶으면 그럴 만한 자리에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제대로 된 사람을 앉혀라.

인사 때마다 가만히 있는 국민들 심사나 뒤틀리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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