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로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배진우(가명'61) 씨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배 씨는 벽을 짚지 않으면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 병원에 가는 데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33㎡(10평) 남짓한 집 안에서 앉은다리를 한 채 두 팔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배 씨가 처한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2004년 신장장애 2급으로 등록된 배 씨는 14년째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배 씨는 단지 거동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온몸에 성한 곳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 씨의 왼쪽 팔은 주 4회, 매번 4시간씩 받는 혈액투석 탓에 잔뜩 부풀어 있었고 치아는 무너져내려 절반 가까이 빠져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여태 힘겹게 버텨왔는데 지금은 정말 한계인 것 같아 막막하네요. 동생이 찾아온 '그날' 내가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명의만 빌려준 동생 사업 망하며 구속돼 건강 악화
배 씨가 말한 '그날'은 동생이 사업을 해보겠다며 찾아온 날이다. 작은 연삭기계 사업을 하다 외환위기 때 실패를 맛본 동생은 배 씨에게 대표자로 명의만 빌려달라고 했다. 버스기사로 일하던 배 씨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배 씨는 "배운 것 없이 평생 공장에서 일하던 동생이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사업이 망한 상황이었다"며 "평생 버스운전만 하던 나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던 터라 명의만이라도 빌려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사업도 5년이 지나지 않아 기울었고 결국 실패를 맞았다. 사업 실패는 배 씨 가족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놨다. 동분서주하던 동생은 결국 부도를 막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 명의만 빌려줬을 뿐 사업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던 배 씨는 회사 부도에 대한 책임으로 구속돼 6개월간 교도소에 수감됐고 건강은 급격히 악화됐다.
배 씨는 "동생 장례를 치르자마자 바로 구속됐다. 워낙 마음고생이 심해 건강을 챙길 형편이 못됐다"며 "원래 당뇨를 앓고 있어 틈틈이 등산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수감된 6개월 동안은 충격에 아무것도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기억"이라고 털어놨다.
출소한 배 씨를 기다리는 것은 이혼 서류였다. 아내는 기울어가는 가계를 참다못해 서류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구했고 그 길로 아내와 장남은 배 씨 곁을 떠났다. 버스를 운전하며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꾸렸던 배 씨의 삶은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아 무너져내렸다.
배 씨는 "가족과 건강, 돈까지 모든 것을 잃으니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다"며 "차라리 그때 동생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모두가 소박하지만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된다"고 눈물을 훔쳤다.
◆돌보고 싶은 가족 있어 삶 포기 못해
배 씨는 1천만원이 넘는 신장이식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10년이 넘도록 현상 유지 성격의 치료만 받고 있다. 지난달에도 오랜 기다림 끝에 신장이식 순번이 돌아왔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배 씨는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는 수술을 받을 수 없어 그동안 수술을 포기해 왔다"며 "치료가 길어지면서 병원비도 지속적으로 드는데다 조금씩 병이 악화돼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배 씨는 10여 년 전 시집 보낸 딸 때문에 삶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사위가 7년 전 늘어난 빚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딸은 식당일을 하며 홀로 두 초등학생 자녀를 키운다고 했다.
배 씨는 남은 삶을 딸과 손녀들을 돕는 데 쓰고 싶다고 했다. 배 씨는 "이혼할 때도 내 곁에 남아준 딸인데 역시 형편이 어려워 마음이 아프다.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막일이라도 해서 딸과 손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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