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오페라축제 관람기] 오페라, 오늘의 중력과 내일의 은총

처음부터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다. 2010년 대구에 온 이후로 매년 오페라축제가 열릴 때면 적어도 한두 작품은 꼭 챙겨보곤 했지만 전 작품을 즐기기엔 여기저기로 몸 쓸 일(재판을 포함해서)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축제의 마지막인 안젤라 게오르규의 갈라 콘서트였다. 특별히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1997년 서울에서의 첫 내한공연에 이어, 2008년 사법연수원이 있던 고양에서의 공연마저 취소되는 바람에 10년여의 기간을 두고 뜻하지 않게 2번이나 바람을 맞은 '설마, 이번에도!'였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오페라 애호가라면 지나칠 수 없을 그녀이기에 서둘러 표를 구해두었다.

첫 곡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중 '저는 창조주의 비천한 종일 뿐…'. 그것으로 충분했다. 20년여 전 그녀는 물론 더 아름답게 불렀을 것이나, 시간이 습자지에 젖어들면서 내는 야트막한 지금의 흐느낌을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꼭 보겠다고 벼른 작품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었다. 2012년 제10회 축제 때 국내 초연을 놓친 아쉬움이 컸다. 제11회의 '탄호이저', 제13회의 '로엔그린'에 이어 이번엔 비록 콘체르탄테 형식이라 하더라도 바그너의 작품이 올려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픈 마음이었다. 다소 허전한 객석은 안타까웠지만 하이네의 원작과 바그너의 음악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고 나니 '박쥐'가 궁금해졌다. 애당초 정적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그렇다 치고, 왈츠를 추고 요란 법석인 '박쥐'를 어떻게 콘서트 형식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인지 봐야 했다. 오스트리아 특유의 흥을 폭발시키며 왈츠를 추고, 우리말 애드리브까지. 우려를 환호로 바꾸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전곡으로는 처음 접해보는 '일 트리티코'는 이번 축제 관람 목록 3순위였다. 3작품, 무엇보다 완전히 다른 3무대를 한 작품에서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움이었다. 매년 축제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며 연출이 보여주는 극적인 역량은 애잔함이 일 정도였다. 창작오페라 '능소화 하늘꽃'의 무대와 연출도 그러했다. '아이다'의 개선 축하 무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응태와 여늬의 전통혼례 축하 무대는 흥겹고 화려했지만, 지나친 욕심인 줄을 알면서도 '청아한 아이다'와 같은 아리아가 없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처음 접하게 된 아리아가 '여자의 마음'이고 가장 좋아하는 아리아가 리골레토가 부르는 것인 만큼 내게 있어 인생 오페라라고 할 개막작 '리골레토'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 말할 수가 없다. 형태가 있는 것들은 중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형태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가 내겐 늘 진리였고 음악은 당연히 그 으뜸이었다. 중력과 은총이 가장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오페라. 다음의 은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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