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석사(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는 세종대왕자태실의 수호사찰이다. 신라 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선석사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고려 공민왕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전 당시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해서 '터를 닦는다'는 의미로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선석사 외에 성주에는 태실 수호사찰이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 태실의 수호사찰인 '태봉사'와 법림산으로 옮겨진 단종 태실의 수호사찰인 '법림사'이다. 법림사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옛터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추정되는 터 주변에서 석축과 기와, 토기, 도자기 등이 발견돼 법림사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단종의 태실은 비극적인 삶만큼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처음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세종대왕자태실에 있었던 단종 태실은 훗날 문종이 즉위하면서 가야산 자락 법림산으로 옮겨진다. 조정에서 숙부들과 같이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세조)은 왕위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법림산으로 옮긴 단종의 태실까지 철저하게 훼손시킨다. 지금은 법림산 단종 태실지에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 태실에 넣어둔 태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선석산 세종대왕자태실에 있는 현재의 단종 태실은 법림산으로 옮기면서 남겨두었던 석물을 복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법림산으로 태는 옮겨졌지만, 최초의 태실을 조성했던 석물은 현재의 선석산에 남아 있을 수 있었고, 이를 다시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실 내부에 실제 단종의 태는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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