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레닌 신화

구소련은 혁명에 관한 조작된 신화 위에 세워진 나라다. 대표적인 것이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뒤엎고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에 대한 신화다. 소련 공산당은 레닌이 유년기 때부터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가 다닌 심비르스크 중등학교의 교장(역사의 장난인 듯 케렌스키의 아버지였다)의 레닌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르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고, 말과 행동에서 학교 당국에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도 일으키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레닌이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르크주의자였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당시 그는 농민의 힘으로 차르 전제정을 타도하고 공화정부를 세운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민의 의지' 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를 실현하려 했으나 농민의 호응을 얻지 못해 지배층에 대한 테러로 노선을 바꾼 것이 '인민의 의지당'이다.

이 당에 가담했던 레닌의 맏형 알렉산드르가 1887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 살해 음모에 연루돼 처형됐다. 이때 레닌은 여동생에게 "혁명을 위한 우리의 길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소련에서 전설처럼 회자됐다. 혁명은 테러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충실하게 따를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설'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확인이다.

소련 공산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말살한 것은 레닌이 아니라 스탈린이란 '수정주의' 역시 거짓말이다. 그 장본인은 레닌이다. 레닌은 1921년 3월 제10차 당 대회에서 소련 공산당 역사에서 가장 운명적 결정으로 불리는, 분파주의 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후 그 누구도 분파주의라는 비판을 피하면서 당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됐다. 스탈린이 트로츠키, 카메네프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장 유용하게 써먹은 무기도 바로 '분파주의'라는 비판이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 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현지에서는 차분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라고 한다. 러시아 혁명은 인간 해방을 목표로 했지만 결과는 인간의 노예화였다. 그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인민이 희생됐다. 그 책임자 목록의 첫머리에 레닌이 자리한다. 그에게 사람은 혁명을 위해 언제든 희생시킬 수 있는 재료에 불과했다. 그는 제정 러시아에서 기근이 발생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기근은 혁명 발발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농민에 대한 원조는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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