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가운데 칠곡군에서 등재 기록물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기록물이 발견됐다.
칠곡군 왜관읍에 사는 김재호(70) 씨는 13일 본지 기자에게 국채보상운동 주민 헌납 내용이 담긴 기록물을 공개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은 1907~1910년 국채보상운동 전 과정을 보여주는 총 2천472건의 기록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개인 기부자 목록은 책 등의 형태로 묶인 것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대구시는 유네스코에 당시 신문에 게재된 기부자 목록만을 제출했다. 따라서 김 씨가 공개한 국채보상운동 주민 헌납 기록물은 지금까지 나온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중 유일한 개인 기부자 목록 서책인 셈이다.
김 씨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은 100장가량이며, 개인 이름과 거주지, 헌납 액수 등이 적혀 있다. 연도는 정미사월로 기록돼 있는데, 서기로 환산하면 국채보상운동이 한창이던 1907년 4월이다.
김 씨는 이 기록물을 1975년 왜관읍에서 농사를 짓던 한 지인에게서 건네받은 뒤 지금까지 43년간 보관해왔다. 그것도 그 지인이 기록물의 가치를 알지 못해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하루 종일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이다. 낱장씩 떨어진 것도 있었고 묶여 있는 것도 있었지만, 기록물의 소중함을 알기에 혼신을 다했다. 이후 헤어지고 떨어진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일일이 한 장씩 떼어내 한지로 밑장을 대 파일책으로 보관해왔다.
김 씨는 평화신문 기자로 20년 재직 후 칠곡에 있는 순심교육재단에서 기획실장으로 15년 역임하다 몇 해 전 퇴임했다. 그렇기에 대구 지역의 대표적 가톨릭 신자로서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서상돈 선생과 국채보상운동의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기록물을 습득했던 1970년대는 국채보상운동의 의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잘 인식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국가에서도 조명을 안 했지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잘사는 시대가 되면 분명히 조명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국채보상운동에 누가 얼마만큼 돈을 냈다고 하는 생생한 기록물이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지인이 버린 것을 악착같이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냈고 지금껏 잘 보관하고 있었어요."
김 씨는 몇 년 전부터 대구시에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려고 할 때 자신의 기록물도 공개하려고 생각해봤지만, 몇몇 관계자에게 말해봐도 전화만 몇 통 올 뿐 찾아와 보는 이가 없기에 뜻을 접었다. 자신에겐 너무나 소중한 유물인데, 별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굳이 이를 건네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앞으로 대구시에서 아카이브를 구축해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을 제대로 보관할 계획이라고 밝혔기에 시에서 적당한 보상만 해준다면 기증할 생각도 갖고 있다. 김 씨의 앞으로의 꿈은 제주도에 개인 박물관을 지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수백 점을 전시하는 것이다. 그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뿐 아니라 1952년 복원 설계된 칠곡군 약목~왜관 낙동강 교량 설계도면도 갖고 있다. 이는 6'25전쟁 당시 경간 1개가 폭파된 옛 왜관철교로, '호국의 다리'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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