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대영의 새論새評] 낙인(烙印)의 정치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법원 판결 전까지 무죄추정 원칙

한국은 낙인찍어 희생양 만들기

적폐·주사파·논두렁 시계에 이목

운명공동체 한번쯤 웃으며 화합

금주 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국하면서 적폐청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이것이 과연 감정풀이인가 정치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말의 진위와 타당성과 별개로 이는 한국사회에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마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생각지 않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면, 한편으로는 급속한 개혁의 실상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각한 내적 균열을 드러낸다.

기원전 5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장군으로 아리스티데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를 승리로 이끈 장군이자 정치가였는데, 그의 정치역정은 단순치 않았다. 어느 날 아리스티데스에게 한 남자가 도자기 조각을 내밀면서 자신은 글씨를 못 쓰니 대신 '아리스티데스'라는 이름을 써 달라고 했다. 당시 그리스에는 몹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도자기 조각에 이름을 써서 추방시키는 도편투표(Ostracism) 제도가 있었다. 기가 막힌 아리스티데스가 그 남자에게 이유를 묻자 답변은 그 이름이 지겨워서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리스티데스는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국외로 추방당했다. 다행히도 그는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하자 3년 만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위대한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도편투표로 적국 페르시아로 추방당해 그곳에서 사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도편투표가 아니다.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법치주의다. 그러나 수사는 조용히 검찰과 경찰이 하는 것이고, 범죄사실이 입증되어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전직 대통령을 범죄인인 양 몰아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테미스토클레스를 적국으로 추방하지 않았더라면 그리스의 멸망 과정은 달랐을 것이다. 국가의 주요한 인물을 함부로 내치는 것은 현명치 못한 행위다.

근래 자유한국당에는 '친박 때리기'가 한창이다. 과거의 모든 잘못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소위 '친박'에게만 온통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 과거 새누리당 지도부가 '친이' 세력을 만악의 근원으로 매도했듯이, 국정 농단과 부정부패의 모든 문제점을 특정인에게 전가시키는 정치적 낙인 찍기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저해한다.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어 '꼬리 자르기' 방식으로 책임을 모면할 때 잘못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지난주에 더욱 기가 막힌 일이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주사파'라는 정치적 낙인을 찍었다.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 세계에서 편 가르기를 가장 잘한다고 소문나 있는 프랑스에서도 면전에서 낙인찍는 방식의 결례는 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과거에 당신은 뭐 했느냐는 식으로 맞대응한 임 실장의 태도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그로써 지지자들로부터는 박수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국민을 감싸지는 못한다.

남부끄럽고 답답한 심정에 '사기열전'에서 가장 통쾌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진시황 사후 중국의 패권을 다투었던 항우와 유방 사이에서 균형추였던 구강왕 경포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원래 '영포'였는데 죄를 지어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을 받게 되자, "관상에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된다고 했다"며 껄껄 웃었고, 이에 이름도 얼굴에 문신 새긴 사람이라는 뜻으로 '경포'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죄인을 규합하여 양자강 근처에서 도적으로 살다가 봉기하여 항우의 오른팔이 되었고 결국 왕으로 봉해졌다.

오늘 정치적으로 낙인찍힌 분들께 특별히 부탁드리고자 한다. 그것이 '논두렁 시계'이건 종북이건 주사파이건 적폐이건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낙인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를 낙인찍은 사람이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운명공동체라면 한 번쯤은 껄껄 웃으면서 화합을 도모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낙인의 정치가 야기하는 안타까운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는 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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