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선수에 부당대우 개선 걸고
前남자 윔블던 챔프 자존심 대결
세상을 바꾼 1973년 실화 소재로
하나, 1973년에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테니스 성 대결 소재. 둘, '라라랜드'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인기와 연기 모든 면에서 최고로 핫한 스타로 떠오른 엠마 스톤의 차기작. 셋, 루저들로 이루어진 가족들의 여행을 그린 코미디 데뷔작 '미스 리틀 선샤인'(2006)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발레리 페리스와 조나단 데이톤 부부의 신작.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기대를 하게 한다.
때는 1973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위기에 봉착한 대통령 닉슨이 통치하던 미국은 변화의 바람이 거셌다.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에 냉전 분위기를 쭉 끌고 가려는 보수주의자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던 때이고, 사회 곳곳의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 그리고 남성우월주의와 멋지게 한판 뜨는 여성들의 독립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려는 보수주의와 새 바람을 몰고 오려는 자유주의의 한판 대결. 그 대결의 압축장으로 테니스 코트가 선택되려는 참이다.
윔블던에서 우승하면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 세계 여자 테니스 랭킹 1위에 오른 챔피언 빌리(엠마 스톤)는 남자 선수들과 같은 성과에도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상금에 대한 보이콧으로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설립한다. 남성 중심 스포츠업계의 냉대 속에서도 빌리와 동료는 발로 뛰며 협찬사를 모집하여 자신들만의 대회를 개최하면서 화제를 모은다. 한편, 전 남자 윔블던 챔피언이자 타고난 쇼맨 바비(스티브 카렐)는 그런 빌리의 행보를 눈여겨본다. 동물적인 미디어 감각과 거침없는 쇼맨십을 지닌 그는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고자 빌리에게 자신과의 빅매치 이벤트를 제안한다. 무모해 보이는 제안이지만, 빌리는 이 시합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직감한다. 그리하여 세기의 대결이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29세 현역 여성 챔피언 빌리의 개인사와 55세 챔피언 출신 남성 도박꾼 바비의 개인사가 교차한다. 유부녀인 빌리는 투어 경기 중 함께 따라다니는 전속 미용사와 나누던 감정으로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발견한다. 또한, 여성 챔피언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자각한다. 도박 중독을 고칠 의지가 없는 무대책의 낙천주의자 바비는 부유하고 현명한 아내의 기에 눌려 지낸다.
두 사람에게 이 세기의 대결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절체절명의 가치이다. 빌리는 여자 선수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를 개선할 것을 걸었고, 바비는 나이 들며 점점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중년 남성의 자존심을 걸었다.
로큰롤이 점점 화려한 글램록과 요란한 디스코로 분화하여 진화해가던 시절, 두 사람의 대결은 화려함과 요란함으로 시끌벅적하다. 이미 이 대결의 승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도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대결 장면은 긴장감으로 팽배하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승리한 자는 대중의 환호성을 한껏 만끽하는 대신 대기실에서 홀로 눈물을 흘린다. 패배한 자는 완전히 뭉개진 자존심 때문에 홀로 남았다. 의미 없는 스포츠 성 대결이라는 야단스러운 이벤트가 끝난 후 두 선수는 서로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빌리에 비해, 바비는 '여성 테니스는 열등하다' '제모 안 하는 페미니스트와 경기해 보고 싶다'는 등 차별적 단어를 연일 쏟아 내거나, 소녀 복장을 우스꽝스럽게 입고 경기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러한 여성 모욕적인 쇼맨십으로 그는 일약 여성들의 비호감으로 등극하며 기꺼이 남성우월론자들의 아이콘이 된다. 그러나 강한 마초의 상징 같았던 닉슨의 파멸을 목격하던 시대에 자신도 권위를 잃어버린 가장으로서 결혼 관계의 파국을 앞두고 있던 바비의 괴기스러움은 노년을 향해 가는 여정의 마지막 발악처럼 여겨진다.
홀로 자신을 돌아보던 두 사람이 다시 환호하는 대중 앞에 섰을 때, 그들은 힘겨운 대결 후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이 대결로 인해 여성 테니스 리그 상금은 올랐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빌리 진 킹은 2015년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 역사를 바꾼 7인의 여성에 올랐다.
스포츠와 코미디, 실화와 재연, 연출과 연기, 여성과 남성, 승자와 패자, 우스꽝스러움과 진지함,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지는 훌륭한 드라마다. 테니스 코트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버린 세기의 사건이다. 그리고 양성평등과 미디어 스펙터클로 후끈 달아올랐던 1970년대를 상징하는 이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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