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였다. 1920, 30년대 잡지 관련 스터디를 하던 중, 독특한 이름의 잡지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있던 선배에게 이 잡지는 도대체 어떤 잡지냐고 물었다. 선배의 답은 간단했다. "'선데이 서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잡지의 성향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그 시절 '선데이 서울'은 특정 잡지를 일컫는 고유명사이자, 통속 대중잡지 전반을 대변하는 일반명사였기 때문이다. 선배가 1920, 30년대의 '선데이 서울'이라고 말한 그 잡지 이름은 '별건곤'(別乾坤)이다.
'별건곤'은 1926년 11월부터 1934년 3월까지 '취미와 실익(實益)'을 내걸고 발행된 대중잡지이다. '별건곤' 즉, '별난 세상'이라는 제명처럼 이 잡지가 보여주는 세상은 상당히 통속적이며 흥미진진하다. 당대 사회의 히로인이었던 단발머리 모던걸이나 이름 모를 양장미인을 미행하고, 신식 결혼식장에 잠입하여 그 이면을 포착하여 기록한다. 또 다른 장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은밀한 비밀고백을 모은 글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별건곤'이 타인의 은밀한 내적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대중의 통속적 '취미' 맞추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니다.
소매치기당하지 않는 법에서부터, 경성을 골고루 구경하는 법, 조선 팔도 맛있는 음식 소개 등 생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실익' 기사도 양념처럼 섞여 있었다. 미용실에서 여자들 간에 오가는 시시콜콜하고도 잡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여성잡지의 일면이 '별건곤'에서 그대로 수용된 것이다. 죽은 여자를 면도시킨 이야기와 같은 '별건곤'에 단골로 실린 섬뜩한 서구 괴담 역시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미용실 잡담 수준의 일반 대중으로서 정통 추리물의 지적 추론과정을 따라가기란 다소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별건곤'의 괴기물은 추리물의 공포와 스릴은 스릴대로 느끼면서, 머리 아픈 추론 과정은 비켜갈 수 있는 최적의 이야기 형태였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고단한 현실 탓일까. '별건곤'은 대중잡지의 가벼움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룬 기사 사이로 독립협회나, 항일운동단체 공명당, 조선의 농업 경제와 같은 난해하고 지겨운 주제의 기사가 함께 게재되었다. 대중의 '니즈'(needs)에 들어맞는 가벼운 읽을거리와 식민지 현실을 일깨우는 무거운 이야기가 함께 공존한 이 구성이야말로 '별난 세상'이었다. 가벼운 대중잡지에서조차 민족 현실을 위한 '계몽'을 도모해야 할 정도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 무거웠던 것이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도, 군부 독재시대도, 민주화 투쟁의 열정적 시대도 모두 지나갔다.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가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지나간 어두운 과거의 어디쯤엔가 있는 듯하다. 대중을 계몽과 교화, 혹은 권력 추구의 대상으로서 삼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류가 세계적 문화현상이 되고 있는 지금, 대중예술은 대중의 선택에 맡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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