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풍자란 무엇인가?

얼마 전 국회에서 KBS 감사를 하면서 개그 프로그램에서 왜 대통령은 풍자하지 않느냐는 국회의원들의 질책이 있었다. 풍자라는 것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인데, 왜 살아 있는 권력은 비판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이의 제기를 한 의원들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만 '풍자'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말을 한 국회의원들이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풍자'(諷刺)는 한자 뜻 그대로 보면 비유하고 찌르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대상의 도덕적인 문제를 아프게 찌르는 것이 풍자이다. 그래서 풍자는 주로 위선적인 자, 억압적인 자,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에 있는 자들처럼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대상의 문제점을 폭로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풍자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 필요조건은 아니다. 채만식의 소설 '치숙'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폐인이 된 오촌 고모부를 일본인 상점의 조수로 일하는 '나'가 비난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나'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일본을 최고로 생각하고, 일본화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무지하고 반민족적 성격을 가진 인물도 권력은 없지만 풍자의 대상이 된다. 문제가 있는 대상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풍자는 억눌린 자들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문제의 개선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풍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도덕적 문제가 없는 대상을 공격하는 악의적인 비방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풍자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방법이라는 점은 풍자를 하는 사람이 풍자의 대상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에서 하인인 '말뚝이'는 무지하면서도 위선적인 양반들을 가지고 논다. 관객들 역시 입으로는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못한 양반들의 모습에 공감하며 즐긴다. 탈춤을 추는 사람들이나 관객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양반들처럼 위선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이 있다면 그 사람은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일단 풍자할 지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확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군에게도 개인적으로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앙심을 품고 공격을 하면 그것은 풍자가 아니라 비방이 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풍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지적하지 않아도 풍자의 효과는 자연히 사라진다.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그 프로그램 하나까지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국회의원이 가장 큰 풍자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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