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대 두 번째인 규모 5.4 강진이 포항을 강타한 지 5일이 지났다. 한쪽으로 기울어버린 아파트, 철근을 그대로 드러낸 기둥이 위태롭게 떠받치는 원룸 등 전파'반파 주택만 230가구. 이재민은 2천여 명에 육박했다. 피해 현장에선 복구작업과 안전진단이 이뤄지면서 집을 떠난 이재민들은 흥해체육관 등 대피시설에서 나흘 밤을 보냈다.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공무원과 자원봉사자가 모여들었다. 며칠 새 훨씬 더 추워진 날씨에 이재민'봉사자'공무원 등 모두가 힘들게 서로를 보듬고 있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이재민이 처음이다 보니 지진 이재민 매뉴얼의 부재가 더 안타깝다.
◆책임 못 지는 안전진단 왜 하나
지진 이후 망가진 주택에 대한 안전진단이 실시되고 있지만, 이재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밀조사 설비가 부족하고 만약 잘못됐을 경우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포항시에 따르면 현재 전문가 55명이 18개 팀으로 나눠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건축사협회 등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파손이 심각한 건물과 공공주택 등을 우선 돌며 출입금지 지역에는 빨간 딱지를, 보수'보강이 필요한 사용제한 지역에는 노란색 딱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건물 100여 곳을 긴급 점검해 아파트 등 18곳에 사용제한 판정이 내려졌다. 피해가 큰 대성아파트와 원룸 등은 철거가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문제는 안전진단 후 실제 사람들이 다시 들어가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원봉사 중인 한 건축전문가는 "현재로선 육안에 의지해 안전진단을 내리고 있는데, 주택 내부까지 세세하게 점검하기 어렵다. 괜찮다고 말했다가 덜컥 2차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토로했다.
◆공무원들 소극적, 시장 질책
피해 건물의 판단에 대해 몸을 사리기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이 피해 건물에 다시 들어가도 되는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데 자신들이 먼저 나서 판단할 근거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공무원은 "전문가들에게 '이제 사람들이 들어가도 되는가'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말을 아낀다. 책임감 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누군가 확실한 답을 줬으면 좋겠는데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필로티 공법으로 지은 원룸에 대해 부실시공 여부나 철거'보수 그리고 추가 피해 방지 보강 등에 대해 논란이 일었을 때도 공무원들은 "사유건물에 대해 시청이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지진 관련 포항시 확대간부회의에서 한 간부가 "사유건물에 대한 철거'보수 등을 시가 나서서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강덕 포항시장은 "입장을 유보했다가 시기를 놓쳐 더 큰 피해가 생기면 책임질 거냐"라며 대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도 서둘러 지진 피해 주택에 진단과 철거'보수'보강에 대한 민'형사상 분쟁까지 고려한 법적인 근거를 갖춘 매뉴얼이 정부 차원에서 강구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도 우왕좌왕
토요일인 18일 오전 아침 식사를 전후해 포항을 찾은 자원봉사자들도 급증했다. 흥해체육관의 경우, 지진 이재민이 1천 명인데 봉사자들만 300명이 넘었다. 그만큼 체육관 내부에 혼란도 극에 달했다. 짜장면을 배식하는 곳에는 배식테이블을 많이 준비하지 못해 이재민들은 추운 날씨 속에 수십m씩 줄을 서야 했다. 다른 음식을 준비한 곳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또한 상당수 자원봉사 단체들이 대외적 주목을 받는 배식봉사를 선호해 그쪽으로만 몰려들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반면 설거지나 쓰레기분리 수거, 주변 정리, 노약자 안내 등 힘들고 고생이 두드러지지 않는 부분에는 자발적으로 나서는 봉사자들이 드물었다.
18, 19일 자원봉사에 나섰던 정모(52'포항시 두호동) 씨는 "이재민 등록, 대피장소 지정, 봉사자들의 임무와 인력 등을 잘 안배하고 이재민 불편을 최소화할 컨트롤타워 및 매뉴얼이 시급하다"고 했다. 포항시는 이 같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19일부터 자원봉사자 등록을 시에서 일원화하고 봉사 장소 등에 대해 조정에 나섰다.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