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또 흔들린다" 공포에 집 못 들어가는 포항

추위·불안과 싸우는 시민들…새벽에 들어닥친 4차례 여진, 집 뛰쳐나와 뜬눈으로 밤새워

포항 지진 발생 후 연일 여진이 이어지자 포항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18일 저녁 7시쯤 여느 때면 환하게 불켜져 있을 포항 장성동 일대 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집을 비운 주민들로 인해 대부분 불이 꺼져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포항 지진 발생 후 연일 여진이 이어지자 포항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18일 저녁 7시쯤 여느 때면 환하게 불켜져 있을 포항 장성동 일대 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집을 비운 주민들로 인해 대부분 불이 꺼져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멀리서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땅이 흔들립니다. 그 공포를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진이 잠잠했던 18일 하루, 조금 방심했던 탓일까. 포항 북구 우현동 한 빌라 입주민 30여 명은 19일 오전 1시 18분쯤 규모 2.0 지진에 화들짝 놀라 웃옷만 껴입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족끼리 손을 부여잡고 옴짝달싹 못한 채 두려움에 떨기를 1시간여. 더 이상 추위를 참지 못해 '이제는 괜찮겠지'하며 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다시 한 번 땅이 흔들렸다. 오전 3시 33분쯤 들이닥친 규모 2.4 지진. 주민들은 "진작에 옆집처럼 외지로 나갈 걸"이라며 이를 악다물었다. 이날 새벽 최저기온은 영하 1.5℃, 얼음이 얼었다. 추위와 싸우다 지친 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오전 5시 7분 규모 2.1, 오전 6시 40분 규모 2.2의 여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흥해읍 주민들에 비하면 우현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내 집인데'라며 집에서 잠을 청하던 주민들은 집이 흔들리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밖으로 내달렸다. 흥해읍 한 빌라 입주민은 "전날 여진이 하나도 없어서 집에 들어가 자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새벽 3시에 짐을 싸서 밖에 나온 게 벌써 6시간째다. 건물 안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 대성아파트 뒤편 반찬가게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님은 없어도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 이렇게 장사라도 하려고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 주인장 얼굴은 잠 한숨 못 잔 기색이 역력했다.

대성아파트는 짐 하나라도 더 건지려는 주민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개인 트럭, 빌린 트럭, 이삿짐센터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관을 당황하게 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주민 최모(57) 씨는 "건물이 기울어져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물건 하나라도 건져야 할 것 같아 일찍 짐을 옮기고 있다. 일단 비싼 것부터 옮기고 있는데, 새벽에 여진까지 있었으니 속도를 더 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끊고 손을 바삐 움직였다. 흥해체육관 등에 몸을 피했던 이재민들도 하나 둘 집을 살펴보러 찾아왔다. 차마 건물 가까이에는 못 가고 멀찍이 떨어져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사실 이맘때쯤은 포항의 봄날이었다. 과메기부터 대게까지 먹거리는 넘쳐나고 두둑해진 주머니만큼 인심도 넉넉해질 터였다. 갑작스러운 지진은 이런 포항의 설렘을 순식간에 한겨울로 바꿔버렸다.

그래도 여진이 잠잠해지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나 싶었다. 그러나 19일 새벽 들이닥친 4차례 여진은 다시 한 번 포항을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거리는 한산하고, 특산물 시장은 을씨년스레 찬바람만 몰아쳤다.

한 대게 회센터 주인 정모(62) 씨는 "이달부터 대게 맛을 보려 전국에서 손님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야 하는데, 지진이 터져버려 매출이 반 토막 나버렸다. 도로도 한산하고, 주차장이 텅 비었다"고 했다. 구룡포 한 상인은 "당장 피해도 그렇지만 여진이 잠잠해져야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죽도시장 한 채소 상인은 "경주 9'12 지진 이후 경주 전통시장이 한동안 손님이 없어 고생했다던데, 그게 그대로 포항에 온 모양이다. 평소보다 손님이 80% 이상 줄었다"며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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