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중국과 영국은 우리들의 비옥한 땅을 탐내어 이 나라를 짓밟았고, 일본도 마찬가지였죠.' '한반도를 말하자면…그 토지가 비옥한데 인구는 희박하다…물산(物産)이 풍부하여 크게 우리 거류민의 이익 획득과 부력의 증진에 소위 천부(天賦)의 옥토(沃土)라 할 수 있다.'
앞은 월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1983년 안정효가 쓴 소설 '하얀전쟁'에 나오는 장면으로, 월남인 촌장이 파월 국군과 나눈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뒤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3년 기록인 '대구부사'에 나오는 한국 거주 일본인 거류민의 생각을 적은 내용이다.
한반도의 비옥함으로 일본이 침략했듯이 촌장 말처럼 베트남의 땅도 비옥했고 식민 제국(帝國)이 탐을 낼 만했다. 특히 옛 월남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시) 남부 야자수 늘어진 메콩강 삼각주는 더욱 그랬다. 메콩 델타로 불리는 이곳은 베트남 곡창지대로, 베트남 전체 경지면적 740만㏊의 35%인 260만7천㏊를 차지할 만큼 최대 경작지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시작돼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을 적시며 바다로 스며드는 '동남아시아의 젖줄'이다. 동남아 최대의 강으로 길이만도 4천900㎞가 넘는다.
이런 메콩강 곡창지대 등 베트남에서 국민 9천200만 가운데 6천만 농민이 1년 3모작으로 거두는 쌀은 연간 4천500만t(2016년). 태국 다음의 쌀 수출 대국이다. 이런 베트남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워 농촌을 바꾸기 위해 농업의 3대 목표로 생산성 증대, 품질과 부가가치 증진을 잡고 있었다.
이를 위해 베트남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경북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었다. 지난 10일부터 3박 5일 경북도 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손재근)와 함께 들른 베트남 농업 현장은 이를 확인한 기회였다. 지난달 경북도를 직접 방문한 베트남 농업연구개발기획청 응우웬 트롱 우엔 지청장이 그랬다. 그는 손 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경북도와의 협력을 바라며 협조를 부탁했고 손 위원장 역시 분야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조를 다짐했다.
사실 두 나라는 오랜 동병상련의 인연을 갖고 있다. 가까운 역사 속 일만도 숱하다. 19C 말~20C 초 조선조 말 흉년 때 베트남은 안남미(安南米)를 수입하던 나라였고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가 활동한 곳이었다. 또 식민 지배와 독립, 남북 분단과 남북 전쟁의 아픔도 겪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 국제결혼과 기업 투자에 따른 활발한 이주, 새마을운동 전파와 농업 교류, 엑스포 공동 개최까지 인연은 진행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특히 경북은 베트남과의 교류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농어업 분야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주곡이자 식량 안보의 최후 보루인 쌀은 좋은 사례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미국 등 해외에 팔던 경북 쌀이 올해 처음으로 상주 아자개영농조합법인에 의해 상주쌀 13t이 베트남에 진출해 하노이를 중심으로 판로 개척에 나섰다.
올해 전체 경북 수출 쌀 221t 의 6%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남다르다. 우리 쌀이 쌀 수출국에 팔 정도로 품질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베트남의 안남미(인디카종)는 우리쌀(자포니카종)과는 다른 품종이다. 하지만 교민을 비롯한 현지인에게도 팔 수 있는 길을 개척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는 국내의 쌀 소비 감소와 논 면적의 축소에 따른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즉 기상이변과 흉작 등에 따른 국제 쌀값 폭등과 식량 확보난과 같은 충격을 완화할 수 있어서다. 이는 결국 식량 안보의 바탕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경북 쌀 농민을 응원하는 까닭이다.
이번 경북도 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의 방문으로 비옥한 땅을 가진 죄(?)로 역사의 아픔을 비슷하게 겪은 두 나라가 농어업을 통해 공동 번영을 위한 길을 트는 디딤돌 하나를 놓았으면 좋겠다. 손 위원장의 "메콩강 야자수 숲이 메콩 델타를 보호해 더욱 풍성하게 하는 듯하다"는 말처럼 두 나라 농어업을 야자수 삼아 베트남과 경북의 곳간이 풍성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