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인간미(人間味)

"맛을 모르니 살맛이 안 나요."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한다며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하소연한다. 미각은 삶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울러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돕고, 먹을 수 없는 물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서 미각을 관장하는 기관은 혀다. 혀에는 유두라는 점막 돌기가 있고 그 속에 맛봉오리(미뢰)가 있다. 이곳에 입력된 정보는 전기 신호로 바뀐 뒤 미각 신경을 통해 대뇌피질의 미각중추로 전달된다. 미각 장애란 이 과정에 이상이 생겨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거나 희미하게 느끼는 증상이다. 미각 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후각 이상이다. 음식 맛은 대부분 향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항암제를 비롯한 약물의 영향이나 구강질환, 영양 결핍 등도 미각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면 시력 저하를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만, 음식 맛이 밍밍할 때 미각 저하를 우려하는 이들은 적다. 미각 장애도 중증이 되면 치료가 쉽지 않으므로 미각 역치 검사 등을 이용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기능적 미각 변화를 호소하는 환자도 늘고 있다. 매운맛, 짠맛 등 점점 강한 맛을 선호하면서 미각이 점점 둔해지는 증상이다. 화학조미료나 설탕, 소금 등의 과다 섭취가 주된 원인이다. 이러한 식습관이 지속될 경우 고혈압, 당뇨,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 옅은 맛을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미각도 지키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5가지 기본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다. 그런데 우리가 서서히 잃어버린 한 가지 맛이 있다.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인간미'(人間味)다.

섣달 그믐이면 구리 료헤이의 소설 '우동 한 그릇'이 떠오른다. 우동 집 문을 닫을 시간,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 두 아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들어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주인아저씨는 슬그머니 1인분 반의 우동을 내놓는다. 이듬해에도 세 모자는 같은 날 우동 집을 찾아온다. 아내는 3인분을 삶자고 하지만 주인아저씨는 '그렇게 하면 저들이 거북하게 여길 것'이라며 역시 1인분 반의 우동을 내놓는다. 세월이 흐른 후 성공한 두 아들이 우동 집을 찾아와 우동 3인분을 주문하고 주인 내외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우동 집 내외가 보여준 맛이 진정한 '인간미'가 아닐까? 드러내기 위한 선행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헤아림이 있는 배려에서 우리는 따뜻한 '인간미'를 느낀다.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은데도 애써 외면하며 지난 1년을 산 것 같아 부끄럽다. 또다시 한 해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다. 따뜻한 정이 그리운 어려운 이웃들과 '인간미'를 나누는 연말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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