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대숙청(1936∼1938)은 내부의 배신자가 자본주의 국가 등 외부의 적과 공모해 소련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공포감의 소산이었다. 스탈린은 특히 '내부의 적'과 그들의 국가 전복 음모의 '존재'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은 스탈린의 머릿속에만 있는 가공물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내부 배신자와 그들의 국가 전복 음모를 폭로해줄 증거뿐이었다. 스탈린은 이를 만들어내야 했다.
스탈린은 이를 '엔카베데'(NKVD'내무인민위원회)의 수장 겐리흐 야고다에게 맡겼는데, 1936년 8월의 제1차 '모스크바 전시(展示)재판'에 회부된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트로츠키의 지령을 받아 스탈린을 포함한 당 지도부 인사들을 살해하기 위한 테러 음모를 꾸민 증거를 조작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고다는 스탈린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런 음모의 존재에 의심을 표하면서 숙청 작업에 속도를 내지 않았다. 그러자 스탈린은 이 '과업'을, 1935년 발표한 논문에서 "스탈린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필연적으로 폭력과 테러로 귀착된다"며 충견(忠犬)을 자임한 니콜라이 예조프에게 맡겼다. 예조프는 스탈린의 기대대로 과업을 훌륭히 수행해냈다.(그 비결은 죽도록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1차 전시재판에서 피고들이 그런 음모를 꾸몄다고 줄줄이 자백한 것이다.
예조프는 이 공로로 같은 해 9월 야고다를 밀어내고 엔카베데 수장이 됐다. 이후 게오르기 퍄타코프, 카를 라데크 등을 대상으로 한 1937년 1월의 2차 재판, 레닌 사후 스탈린'트로츠키와 권력을 놓고 경쟁했던 부하린 등이 회부된 1938년 3월의 3차 재판에서도 예조프는 '반소비에트 음모'를 밝혀내(?) 충견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야고다도 3차 재판에서 같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총살됐다. 예조프 역시 그의 권력의 비대화를 경계한 스탈린에 의해 영국과 폴란드 간첩으로 몰려 같은 종말을 맞이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들의 잇따른 구속 사태와 관련해 수사 검사들을 '정권의 충견'이라고 했다. 이런 모욕적인 비하를 검찰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난 9일 문무일 총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지방의 한 검사장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 정치적 사건에 검찰이 앞장서고 있으니 욕을 먹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검찰이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짐작게 하는 실마리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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