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진 안 나겠죠?…그렇게 꼭 믿고 칠래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포항제철고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포항제철고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이제는 지진이 안 날 겁니다. 꼭 그럴 거라고 믿어야 그나마 안심이 되지요."

22일 오후 2시쯤 포항시 남구 이동고등학교. 저학년생이 떠나고 텅 빈 학교에 하나둘씩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잡담을 나누면서 운동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지진과 시험에 관한 것들이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인지 간간이 즐겨 하는 컴퓨터 게임 이야기도 오간다. 다음 날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은 그렇게 예비소집장을 찾으면서 저마다 설레고 긴장되고 두려운, 복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원일(19) 학생은 "지진은 걱정 안 된다. 친구들도 지진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어서 시험을 마치고 친구들과 실컷 게임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여진이 계속 이어진 탓에 마음 편히 충분히 쉬지를 못했다. 시험장에 제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씩씩한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들의 걱정은 보다 직접적이다. 수험표와 함께 나눠준 비상 대응 매뉴얼을 꼼꼼히 읽어보며 친구들과 지진 이야기를 풀어냈다. 담임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하죠?"라고 물어본다.

정하윤(19) 학생은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조차 깜짝깜짝 놀란다. 만약 시험 볼 때 여진이 온다면 머릿속이 하얗게 될까 봐 걱정"이라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모두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시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지금껏 공부해온 것들을 정리하며 최대한 평정심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진으로 파손이 심한 포항고 대체시험장으로 지정된 포항제철중학교에는 바뀐 시험장을 확인하려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유난히 많이 찾았다. 아들과 함께 왔다는 한 어머니는 "포항고는 집에서 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여기까지 오려면 1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다"며 "부디 평정심을 갖고 시험 치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1시간가량 이어진 예비소집에서는 수험 시 주의사항과 함께 지진 대응 매뉴얼에 대한 교육에 많은 시간이 할당됐다. 담임교사들 역시 자기 학생들 주위를 맴돌며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김효순(51) 이동고 교사는 "매년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특히 이번 제자들에게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며 "일부러 우스갯소리도 많이 하고 같이 심호흡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한다"고 했다.

수험생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도 교사들의 일은 이어졌다. 시험장인 교실 내부의 안전상태를 다시 살펴보고, 지진 발생 시 대책회의 및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기 위해서다. 이동고 류상렬 교장은 "학생들이 12년간 공부한 결실을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갑작스러운 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계속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경북도교육청은 포항 12개 수능시험장에 '지진계'를 설치해 운용하기로 했다. 지진 발생 시 수험생 대피 등을 결정하는 시험감독관이 임의로 판단하지 말고 지진계에 나타나는 수치 등을 참고해서 결정하라는 의미다.

지진계는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흔들림 등을 감지해 그래프와 수치로 규모 등을 표시하는 장치이다. 고사장 한쪽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측정센서를 설치하고 포항교육지원청에서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체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수험생 불안을 줄이기 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측정센서를 설치했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