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스피드 시대라는데 대한민국은 3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기초인 헌법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새로운 세상에 맞도록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길 찾아주는 내비게이션도 몇 달이 지나면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판에 국내외 상황이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 됐건만 대한민국 헌법은 30년 전 그대로다. 업데이트도 하지 않은 채 예전 '버전'을 그대로 쓰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불편을 없애겠다며 국회가 나섰다.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를 목표로 개헌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주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을 만났다. 대한민국을 새로이 이끌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 위원장은 기자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놨다. 이 위원장은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의 사돈이며 최근엔 자유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까지 맡아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개헌특위, 활동이 부진하다는 말도 있고 차근차근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돼가나?
▶계획한 대로 잘 가고 있다. 올해 1월 1일에 출범해서 헌법 개정과 관련한 쟁점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위원들이 쟁점들을 토론하면서 제도의 장단점 등을 살펴보고 있다. 외국 헌법의 입법례와 운영 경험, 그리고 우리나라에 도입했을 때 부작용 등을 점검하면서 숙의해가는 과정이다. 성급하게 얘기하는 분들은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별 이견이 없는 쟁점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합의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30년 전 개헌 때는 속도가 빨랐는데? 이번엔 왜 이리 더디냐는 얘기가 있다.
▶그 당시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6'10항쟁, 직선제 개헌 요구, 6'29선언 등을 거치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12월 대선을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준비해야 하니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지방선거 때 하려고 하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대선 후 이 일정에 맞춰서 내년 2월 말까지 개헌 합의를 이루도록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달은 토론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초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이제 합의안을 조문화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조문화는 내년 2월까지 끝내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고 다음 달부터 조문화 작업을 시작한다.
-국민들에게 왜 개헌을 해야 하는지 쉽게 설명한다면?
▶국가권력이 대통령에게 너무 집중돼 있고 대선을 통해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 그리고 이 구조가 제왕적 대통령을 낳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논의에서 개헌 필요성이 대두됐다. 분권과 협치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권력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점에서 개헌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 측면에서 30년 만에 개헌 필요성이 인정됐다.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개헌을 하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다 이왕 개헌을 한다면 권력 구조뿐만 아니라 국민 기본권, 지방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지방분권, 이런 것을 헌법에 담는 개헌을 해야겠다는 논의까지 이어졌다.
-1987년 만든 현행 헌법에 대한 평가를 해본다면?
▶이 헌법을 통해 민주화가 많이 진척됐다. 정권교체도 몇 차례 이뤄졌다. 국민기본권 신장을 위해 헌법재판소도 세계적인 모범이 될 만큼 많은 판례를 축적해 오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헌법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1987년 개헌 이후 탄생한 대통령 7명 모두의 말로가 안 좋았다. 권력이 너무 집중된 데 따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다. 분권과 협치가 대안이라는 화두가 대두됐고, 결국 지난번 촛불집회, 탄핵 등을 거치면서 개헌에 대한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역구가 경남 마산창원이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견해는?
▶지방분권의 본질은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자치권 속에는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등이 다 포함될 수 있다. 이것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대개 공감한다. 다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이 꼭 헌법적인 사안은 아니어서 다소 논란은 있다. 지금 법률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부분이 있다. 다만, 조례를 법률과 동등한 지위로 할 것인지 등은 현행 헌법과 안 맞으니 개헌이 필요하다. 그런 내용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법률로 다 된다. 지방재정권 확대, 즉 국세'지방세 비중을 현행 8대 2에서 7대 3으로 바꾸자는 내용도 헌법을 바꾸지 않아도 법률로 다 가능하다. 그런 세부적인 내용들은 헌법에서 못 박기도 어렵다. 헌법에서는 그냥 일반화된 원칙으로 지방재정권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 정도를 둘 수 있다. 이 조항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지방재정권 확대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분권 강화라는 추세에 맞춰 헌법에 명문화하고 선언적 규정을 헌법에 두는, 이런 수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지금 지방분권 강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수준을 어느 정도로까지 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조세 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조례로 세금을 거둘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논의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있다. 분권을 한다고 할 때 경찰 등 여러 곳의 중앙정부 기관들을 지방에 어느 수준까지 이양하느냐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이런 각론에 대해서는 온도 차이가 솔직히 있다.
-해외의 개헌 사례는 어떤가?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나?
▶모범적인 헌법으로 꼽는 곳이 독일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헌법 정도가 될 것 같다. 많이 회자된다. 독일은 옛날 프로이센 제국 시대에서 공화정으로 넘어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갔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헌법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 독재 출현을 막지는 못했다. 그래서 2차 대전 후 독일이 동서로 나뉘어 서독 기준으로 보면 통일될 때까지 헌법이 아니라 기본법이라고 여기며 겸허한 자세를 견지해 왔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내각제를 하면서도 안정된 정부가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서 내각 불신임에 대한 안전장치를 창안했다. 건설적 불신임제, 즉 '후임 총리를 선출해야만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 등의 조항을 통해 불신임안 남발이 억제됐다. 이를 통해 전후 독일 정부가 안정됐다. 총리가 정부를 이끌더라도 메르켈 총리 이전 헬무트 콜, 브란트, 슈미트, 아데나워 등 독일 총리들이 비교적 안정된 정부를 유지하면서 일관된 정책을 잘 실현했다. 또 협치도 잘 이뤄졌다. 연정 등을 통해 편향된 이념의 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의 공감대를 얻어갈 수 있는 정책 운영을 통해서 나라를 상당히 안정시키면서 국가 발전을 이뤄갈 수 있었다. 그 힘으로 통일을 이뤄냈다. 정권이 바뀌어도 과도하게 정책이 변하지 않고 전 정부의 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 잘된 것은 그대로 승계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하되 급격한 정책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대동독 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했다. 총리가 바뀌어도 대동독 정책 역시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안정되게 나라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독일 헌법 개정 절차는 어떤가? 우리처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나?
▶독일은 헌법 개정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다. 의회 내 다수의 동의를 거치면 개헌이 된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빈번하게 개헌을 했다. 개헌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도 개헌을 쉽게 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현재 개헌특위에서 그 내용도 쟁점이다. 헌법은 개정 절차가 어떠냐에 따라 경성헌법, 연성헌법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우리는 경성헌법(개헌이 일반법률 개정보다 어렵다)이다. 연성화시키자는 논의가 지금 개헌특위 쟁점에 포함돼 있다.
-개헌안 국민투표를 하는 시점인 내년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기도 한데 실현 가능할까?
▶실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의 기본 틀을 정하는 개헌을 지방선거에 붙여서 논의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지방선거에 붙여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할 것이 아니라 별도로 날을 잡아서 하자는 논의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잘 검토를 하고 중지를 모아서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본다.
-자유한국당의 인재영입위원장도 최근 맡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방선거에서 우리 고장에 자치단체장을 누가 하느냐에 관심이 상당히 많은데, 어떤 분들을 영입할 것인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분들을 모셔야 한다. 특히 젊은 청년과 여성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필요하면 20대 청년도 과감하게 모실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정치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정치교육에 대한 비중을 늘려야 한다. 정치교육은 민주주의교육이다. 이런 교육이 좀 일찍, 즉 학창 시절부터 이뤄져야 한다. 젊어서부터 정치에서 역할을 하는 것도 우리가 교육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 독일은 상당히 일찍 민주시민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각 정당의 싱크탱크들이 독자적인 기능으로서 민주시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아주 어린 학생 시절부터 교육을 시킨다. 우리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교육을 통해 좀 더 일찍 정계에 진출시키고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40대 리더가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유한국당 경우, 내년 지방선거 구도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은데?
▶지금 지지율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가는 단계로 본다. 안으로 혁신, 화합, 단결, 이런 것을 조화롭게 잘 추진하면서 이제 좀 잃었던 신뢰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돌파력이 있는 사람이다. 대여 강경투쟁이 필요할 때는 강경투쟁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지금 적폐청산을 빌미로 이뤄지는 정치보복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저항해서 이런 것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홍 대표가 잘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정치보복이라는 의미인가?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보기관과 국방 분야는 기밀 차원에서 국가의 정의와 안보를 구하는 곳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고차원의 국가정의를 추구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런 국가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임무 수행을 단선적으로 법적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차원을 달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인들이 들어가서 함부로 국정원 서버를 들여다본다든지, 각종 정보를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들여다본 자료를 토대로 평면적인 평가를 거쳐 수사의뢰를 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하다. 그러면 누가 앞으로 정보 업무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겠나? 절차적인 정의도 필요하다. 기밀 정보에 접근하는 절차도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희생적 모습으로 나서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정보기관은 외국하고도 정보 교류를 해 나가야 하는 시대다. 우리 혼자만의 정보를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과 싸워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 기밀들을 까발리면 우리에게 협조를 해 줘야 할 해외 정보기관이 우리에게 정보를 잘 주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 걱정스럽다.
-적폐청산 수사도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고차원적인 국가정의를 지켜가는 것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하는 검사'판사들이 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 잘 정립돼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정당방위, 정당한 업무 행위를 잘 봐야 한다. 국가적인 큰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단선적으로 보면 위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단선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평면적으로 위법이라 하더라도 높은 차원에서 보면 정당한 행위,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 적법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구조가 있는데 우리 법조인들이 그런 것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고, 마인드 형성이 잘돼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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