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드시죠?"
지진 트라우마 상담사의 말에 울컥했다. 지난 15일 포항 지진 이후 수많은 이재민과 자원봉사자, 현장 공무원에게 먼저 이 말을 건넸지만,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머리 위로 한참을 스쳐 지나갔다.
직접 지진 피해를 당한 이재민과 지역 주민들에겐 보잘것없겠지만, 진앙에서 불과 7㎞ 떨어진 우현동 기자의 집에서도 이번 지진은 거대한 공포였다. 지난해 9'12 경주 지진을 겪을 때는 수십㎞ 떨어진 곳이어서 그랬는지, 이 정도의 공포는 아니었다. 포항 지진 이후 작은 소리나 진동에도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빨리 뛰고, 손이 흥건해질 정도로 땀이 났다. 두통까지 겹치면 그날 밤은 두 시간 정도 뒤척이다 잠을 자야 했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것도 차일피일 미뤄왔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23일 포항 한 이재민 대피소 지진 트라우마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심리검사 한번 해보시겠어요?"
미소가 인상 깊은 30대 초반의 상담사가 말을 건넸다.
상담의 첫 순서는 현재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심리검사였다. 모두 20항목으로 돼 있는데, 0~3점까지 점수를 합산하면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의 단계가 나온다. 내 점수는 21점. "'심각한 우울'인 상태로 나오네요. 바로 전문의와 상담해보시겠어요?" 상담사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1차 상담 내용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전문의가 바로 옆 의자로 안내했다.
"과거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세요?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게 느껴지시나요?" 안정된 낮은 톤으로 차분하게 질문하는 전문의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전문의의 질문은 세부적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일일이 적었고, 가끔 미간을 모으며 집중하기도 했다. 대체로 지금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 항변하듯 하는 말을 묵묵히 들어줬다. "가족 중에도 비슷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분이 계시냐"는 질문에 아내가 떠올라 아내를 지켜봐 왔던 모습을 자세히 설명했다.
"시기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말할 때는 아니에요. 심각한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 반응으로 보여요.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증상 정도로 보면 꽤 증상이 있다고 판단되네요."
적고 분석하길 한참을 하던 전문의는 펜을 놓고 말했다. 전문의는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 복식호흡, 이완요법을 알려줬다. 신경안정제 등 약물로 불안감을 달래는 방법보다는 우선 자연치유가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면서도 견디기 힘들 것 같으면 병원 치료를 안내해 약물치료를 받도록 도와주겠다는 말도 했다.
"한 사람이 불안해하면 그 불안이 전염돼요. 현재 상황을 의연하게 대처하고 동요하지 않는 분이 계시면 '저렇게 생활할 수 있구나' 잊어버릴 수도 있을 거예요. 가족과 친지분들과 함께 있는 것을 권해 드려요."
전문의는 이 말에 더해 "지금까지는 정상적인 반응 범위에 있어요"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당연히 상담 한 번에 불안감이 다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이 불안감을 극복할 방법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짐을 덜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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