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일째 비상근무, 공무원들도 '파김치'

포항시청 공무원 홍원진(37) 씨는 요즘 오전 6시면 딸을 등에 업고 집을 나선다. 네 살배기 어린 딸의 잠투정이 딱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청 내 어린이집에 딸을 맡겨두고 홍 씨는 곧바로 16층 사무실로 향한다.

원래 정책기획관실에 근무하던 홍 씨는 15일 지진 이후 긴급 편성된 '이재민 주거안정대책반'에 배정됐다. 같은 공무원인 아내는 본래 문화예술과 업무를 접어두고 지진피해 현장조사 지원에 나섰다. 밤낮없는 지진 수습 일정에 짬짬이 밀린 업무를 해결하려면 보통 퇴근 시간은 자정을 넘기기 마련이다. 어린 딸을 다시 데려가는 것은 항상 노모의 몫이다. 포항시 북구 양덕동 홍 씨의 집과 부모님의 집 모두 이번 지진에 균열이 가고 자잘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집 잃은 이재민들을 살피느라 자신의 손해 따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매일 서너 시간의 쪽잠을 자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날들이지만 홍 씨는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한다.

홍 씨는 "이재민 대부분이 우리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분들이다. 나도 집사람도 너무 지치지만 현장에서 이재민들을 보면 마치 우리 부모님인 것 같아 안쓰럽고 죄송한 마음뿐이다"면서 "가끔 고생이 많다며 격려를 해주시거나 음료를 권하시는 분들 덕분에 피로를 잊는다"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진 피해 이후 관련 현장에 투입된 연인원은 2만8천여 명이 넘는다. 공무원 7천여 명, 군인 4천여 명, 경찰 9천여 명, 소방 5천여 명 등이다. 이들은 피해 현장 조사와 복구, 지원 대책 마련, 이재민 보호소 관리 등 곳곳에서 남모를 땀을 흘리고 있다. 이재민과 함께 밤을 새우며 이들의 불편을 살피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막말이나 어이없는 요구에는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지진 피해와는 상관없는 집 안 쓰레기를 치워달라거나, 이 기회에 자잘한 집 수리를 부탁하는 식이다. 이럴 때면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이재민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억지로 마음을 다잡는다.

이재민 보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포항북부소방서 최은우(50) 두호119안전센터장은 "8일째 현장에 나와 꼬박 밤을 새우는데 버틸 장사가 어디 있겠나. 피곤하고 힘든 건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양덕에 두고 온 가족들이 더 마음에 걸린다"면서 "나도 그렇지만, 모든 소방대원들과 자원봉사를 온 의용소방대원들도 모두 지진 피해를 입은 이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달려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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